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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서 말하기로 -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캐럴 길리건 지음, 이경미 옮김 / 심심 / 2020년 12월
평점 :
"사람들이 내게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질문할 때
나는 답한다.
내가 말하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하다.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지만 또한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다.
목소리는 숨과 음, 단어, 리듬,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목소리는 강력한 심리적 도구이자 통로이면서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한다.
말하기와 듣기는 정신적 호흡과 같다. " (30p)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꼈어요.
침묵에서 말하기로.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어요. 만약 미투운동이 없었다면...
여성들은 왜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해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미투운동 이전, 무려 40여 년 전에도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외침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침묵에서 말하기로 (In a different Voice)》는 하버드대학교 최초의 여성학 교수이자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인 캐럴 길리건의 첫 책이라고 해요.
처음 발간된 것은 1982년이지만 집필하던 시기는 여성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부터였다고 해요. 하버드대학교 출판사는 이 책을 "혁명을 시작한 작은 책"이라고 소개했으며 수십 년간 이 책은 심리학계의 활발하고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요.
저자는 여성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여성의 삶을 포함하면 심리학과 역사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서술되는 방식과 역사를 전달하는 목소리의 주체를 문자 그대로 송두리째 바꾼다는 걸 의미해요. 그동안 여성들은 남성들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문화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깊이 받아들이면서 여성들과의 단절을 토대로하는 삶의 질서에 흡수되었던 거예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심리학계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되찾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 추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결과물이에요. 책의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세 개의 연구는 모두 자아와 도덕 개념, 도덕적 갈등과 선택의 경험에 관한 인터뷰를 토대로 주요 가설을 설명하고 있어요. 각각의 연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며, 사용하는 언어와 인간관계가 그들의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가정했어요.
이 책에서 프로이트, 에릭슨, 콜버그, 피아제 등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에서 여성을 지속적으로 배제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남성 심리학자들은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여성의 문제로 돌려왔으며,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어요. 여성들은 사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되면서 자신을 기존의 사회적 합의, 다시 말해 남성이 만들고 남성에 의해 시행되는 합의나 판단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된 거죠. 물론 20세기에는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하던 많은 권리가 합법화된 시기였으나 공적 논쟁과 갈등은 계속되었어요.
저자는 '돌봄의 윤리'를 여성의 도덕 발달 기준으로 제시하며 인간 발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어요. 자신과 타인의 평등을 전제한 권리 개념이 자신을 더 강한 존재로 여기게 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직접 돌보게 했고, 이러한 여성의 인식 변화는 여성 심리학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여성들은 더 이상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1인칭의 목소리로 자신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여성 심리학은 여성들의 성인기 삶에 대해 여성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남성과 여성은 다른 관점으로 성인기를 경험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 언어들은 중요한 방식으로 서로를 설명하고 있어요.
지난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목소리와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달 이론에만 귀 기울여왔기 때문에 최근에서야 여성의 침묵에 주목하고 그들의 발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요.
《침묵에서 말하기로》는 국내에는 1997년 동녘에서《다른 목소리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후 오랫동안 절판된 상태였다가, 2020년 재출간되었어요.
과거의 불평등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불평등은 존재해요. 저자는 침묵했던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을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