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괜찮은, 그런 날이 있을까요.
<저세상 오디션>은 박현숙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얼마 전 읽었던 <구미호 식당> 후속작이라고 하네요.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뭔가 음침하고 무거울 것 같아서 꺼려진다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 소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어요.
주인공 나일호. 열여섯 살의 중학생으로 옥상 위에 서 있던 나도희를 구하려다 같이 떨어져 저세상에 오게 됐어요.
나도희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인데 '천재 래퍼'로 유명해진 아이예요. 사실 일호는 도희의 팬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해왔지만 실제로 도희를 본 건 처음이에요.
그런데 함께 죽어서 저세상에 올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에요. 황당하고 억울한 노릇.
저세상, 엄밀하게 따지자면 일호가 와 있는 곳은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승 길목을 막아 선 이들은 마천과 사비.
"인원은 맞나?"
"예. 올해 6월 12일 광오시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열세 명입니다. 확인해보시지요. 여기." (11p)
원래 죽은 자들이 가야 하는 도착지는 무지개가 너울거리는 산인데, 그곳까지 아무나 갈 수는 없대요.
살던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그 산 주변으로 모여들고 심판을 받는대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심판인데, 시간을 꽉 채우고 온 사람들은 이 세상과 저세상의 중간에 놓인 강을 건너게 된대요.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오게 된 사람은 지금 일호가 서 있는 이 길로 오게 되는 거래요. 심판을 받는 곳까지 쉽게 갈 수 없는 거죠. 다행히 오디션을 거쳐 합격한 사람은 지나갈 수 있어요. 모두 10번의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며, 무엇을 하든 상관 없이 심사위원을 눈물 흘리게 만들면 합격이에요.
생전에 가수였던 사람은 구슬픈 노래를 부르지만 탈락, 천재 래퍼였던 나도희도 랩을 하지만 탈락, 몇몇이 모여 연극을 해도 탈락, 탈락...
다들 지쳐만 가는데...
그때 일호에게 은밀히 다가온 도진도라는 쉰한 살의 아저씨는 마천과 사비의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면서 이런 제안을 해왔어요.
네가 죽은 건 오류니까, 마천을 찾아가서 세 가지 요구를 하라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전부 오디션에 상관없이 길을 통과하게 해주는 것과 일호를 집으로 보내는 것, 그리고 길을 통과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도희는 빼라는 것.
일호 입장에서는 마천이 실수로 자신을 데려온 거라면 혼자만 돌아가면 되는 건데 왜 굳이 도진도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도진도는 집요하게 일호를 협박했고 그 모든 일이 마천에게 알려지면서 일호마저 이승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제 일호가 할 수 있는 건 딱 한 번 남은 오디션뿐.
일호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어요. 어쩌다가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느냐고 탓하고 싶어요. 분명 견디기 힘든 무언가가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겠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죽음 이후는... 하지만 살아 있다면 기회는 있는 거잖아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딘다면.
<저세상 오디션>을 읽으면서 상상해봤어요. 내가 일호였다면,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