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뢰 연습>은 수전 최의 소설이에요.

당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신뢰, 그 본질은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면 <신뢰 연습>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주인공 세라는 열다섯 살. 지금은 7월 초, 세라는 데이비드와 올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어요. 작년부터 약간의 낌새는 있었지만 서로 강하게 끌린 건 1학년 가을 수업을 받을 때였어요.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 이름은 시립 공연 예술 아카데미(Citywide Academy for the Performing Arts)인데 다들 CAPA라고 불러요.

CAPA에서 연극과 1학년 학생들은 연기 수업인 '신뢰 연습'을 해요. 수업 방식은 다양해서 침묵하기, 눈 가리기, 탁자나 사다리에서 뒤로 자빠지면 학급 친구들이 받아내기, 상대방이 한 말을 되풀이하기 같은 것들이 있어요. 담당 교사인 킹슬리는 수업 첫날, 칠판에 분필로 비스듬히 'THEATRE' ('연극'의 영국식 철자)라고 적었어요.


"이렇게 써야 합니다. 이 단어의 끝을 'ER'로 표기한 과제물은 통과되지 않을 거예요."

이게 실제로 킹슬리 선생이 처음 한 말이었어요. 세라의 상상처럼 '너희는 나에게 쥐뿔 아무것도 아니야'가 아니라.  (10p)


세라를 중심으로 남자 친구가 된 데이비드와 킹슬리 선생, 그리고 CAPA 연극과 열네 살 반 친구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윌리엄, 줄리에타, 패미, 타니콰, 샹탈, 앤지, 노버트, 콜린, 엘러리, 캐런, 조엘... 마지막으로 마누엘.

그밖에 등장인물로는 영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이 있어요.


킹슬리의 신뢰 연습 시간에는 별별 희한한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창문이 없는 연습실의 전등을 다 끄고, 어둠 속에 학생들을 가두는 거예요. 어둠은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서 은밀한 모험을 할 수 있어요. 슬금슬금 기어가기와 함께 더듬기, 만지기를 묵인하게 되었어요. 아니, 부추겼다고 해야 하나. 조명이 꺼진 순간 누군가가 세라 옆으로 달려와 여기저기를 더듬대다 가슴을 힘껏 쥐었고, 세라는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힘을 실어 발로 힘껏 그를 밀어냈어요. 세라는 노버트라고 확신했어요. 늘 세라 가까이 앉아 빤히 쳐다봤으니까. 이후 세라는 엉거주춤 계속 게걸음을 쳤고, 그러다가 손 하나가 세라의 왼쪽 무릎을 잡더니 손바닥으로 허벅지 앞쪽과 소용돌이 패턴의 스티치를 쓸어내렸어요. 바지 위로 손의 온기가 느껴졌고, 갑자기 뱃속이 텅 비고 마음의 문이 가만히 열렸어요. 그는 한 손으로 세라의 허벅지를 짚고, 다른 손은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 면도한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어요. 도톰한 손끝에 모기 물린 자국처럼 살짝 봉긋한 것이 느껴졌어요. 그건 데이비드의 모반이었어요. 데이비드의 왼쪽 입가에 있는 초콜릿색의 납작한 점, 이것은 데이비드의 표식이자 그의 점자였어요. 그때부터 세라와 데이비드는 서로의 몸을 알아갔고 사귀게 된 거예요.

둘의 관계가 어긋난 결정적 사건이 있어요. 데이비드가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세라에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넸어요. 옆에서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세라는 그 상자를 데이비드 손에 다시 쥐여주며 나중에 열어보겠다고 했어요. 구경꾼들에게 무심했던 데이비드가 세라의 반응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세라는 수업 내내 데이비드의 시선을 느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어요.


데이비드에게 사랑은 선언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세라에게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 세월이 흐른 후, 세라가 일개 관객으로 극장에 갔을 때, '무언의 언어는 있을 수 없는가?'라는 배우의 대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놀라리라. 데이비드보다 두 줄 앞에 앉아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목덜미에서 나방처럼 날아가지 못하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세라는 어휘 없는 이 언어에 맞는 표현을 몰랐다. 데이비드가 이 언어로 말을 걸지 않자 그게 무슨 뜻인지 세라는 모를 터였다.  (34-35p)


유독 세라를 편애했던 킹슬리 선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가 했던 신뢰 연습이나 상담하듯 조언했던 모든 말들...

자기 감정에 완전히 접근하라고?

킹슬리 선생은 "자기 감정에 접근하는 것 = 순간에 존재하는 것. 연기 = 허구의 상황에서 진솔한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어요.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자기 감정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현실은 연기가 아닌데, 진솔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맞는 걸까요.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의 아이들.

그들에게 일 년의 시간이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요. 표면적으론 운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당시 아이들은 자신들한테 벌어진 일들을 해석할 수 없었어요. 현실에는 가짜 감정으로 반응하는 연기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세라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어느 날 밤의 일로 끝이 나지만 <신뢰 연습>의 이야기는 아직 더 남아 있어요.

다음은 캐런의 이야기예요. 캐런은 실명은 아니기 때문에 앞서 들려준 이야기에 나온 친구와 동일 인물은 아니에요.

지금 캐런은 로스앤젤레스의 스카이라이트 서점 밖에 서서 옛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캐런은 30세고, 옛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며 작가예요. 둘 다 18세 이후로 보질 못했어요. 친구의 이름은 세라. 성공한 소설가. 서점에서는 독자들을 위한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에요.

세라의 소설에서 세라는 캐런과의 실제 우정을 세라와 조엘의 우정으로 치환했고, 그 우정의 결말을 '신뢰 연습' 쇼로 둔갑시켰어요. 둘이 서로에게 느낀 모든 것이 여름을 지나면서 거의 자연스럽게 죽어갔고 우정은 끝나버렸어요. '신뢰 연습' 시간에 킹슬리 선생이 그들에게 시킨 연습들은 일종의 포르노였어요. 아이들을 무대에 올려서, 세라와 데이비드가 주목을 받아 모두의 부러움을 받은 것처럼, 그것은 그들의 스타덤이었어요. CAPA에서의 스타덤 또한 신념 체계라는 걸, 결국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집힐 거라는 걸, 그 나이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거예요. 


REpeat (반복) / rePEAT (반복하다)는 캐런의 명사/ 동사 목록에 없었지만,

거기 있어야 마땅했다. 똑같은 방식이니까.

행동, 사건, 반복된 다른 일,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기.

'넌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를 반복하는 것은 

'내가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를 뜻하기도 한다.  (294p)


<신뢰 연습>은 소설 속 소설, 이야기 속 현실이 등장해요.

마치 킹슬리 선생의 신뢰 연습 수업처럼 상대방이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는 방식 같아요. 반복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읽고 나서, 또 몇몇 장면들을 다시 읽었어요. 아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왜 나 자신이 하는 선택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거야?

선택할 때는 타인을 위해 선택하는 거거든. 

우린 겹친다고. 엉켜있지.

상처 주지 않을 도리가 없어.  

   (390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