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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
정란희 지음 / 보름달데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은 정란희 시인의 시집이에요.
시인은 미완의 문장에 당신 마음이 얹어져 시집을 지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이 시집은 사랑, 이별, 우정, 그리움, 추억을 담아낸 "105일의 연서"이자 당신만을 읊조리는 기도라고 해요.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며 그리워했기에 마음을 적어낸 편지가 되고 간절한 기도가 되었을까요.
그래서 첫 번째 시는 시집의 제목이자 그 제목이 각 연의 첫 글자로 이루어진 N행시예요.
당신의 곁을 떠도는 은우隱憂를 목도하며
신께 기도를 했습니다
마르고 닳도록 당신의 삶의 중량과
음지에 놓인 당신
의 은닉의 시간들을 소거해
볕살 좋은 곳에서 켜켜이 퇴적된 행복감
...
(이날의 내 기도는 어지간히도 당신만을 읊조렸던 모양입니다)
(14-15p)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랑은 시를 노래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서, 사랑했으니까, 사랑 때문에... 결국에 시는 사랑의 흔적이 되었네요.
<그 겨울 당신의 분다>라는 시의 마지막 연은, "그 겨울, 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당신 마음의 볕, 사랑은 추운 겨울도 따스한 볕으로 감싸주네요.
사랑, 그 흔한 말.
그러나 시에 담긴 사랑은 결코 흔한 말이 될 수 없어요. 그때의 사랑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말이니까요.
시집을 읽다보면 신기하고 놀라워요. 누군가의 마음이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일지라도 시가 되면 새로워지나봐요.
<내 안의 한 사람>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베껴 쓴 내 마음 안에 / 문장으로 숨 쉬며 살아가는 / 오직 내 한 사람이 / 너로 조각되어 내 안에서 자란다"라고 되어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점점 자라난다는 표현이 아름다워요. 그러나 이별은 잔인하게 그 자라난 마음을 도려내는 일이라 아픈 것 같아요.
편지의 묘미는 추신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추신을 적기 위해 앞서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는지도 몰라요.
이 시집에서 추신은, 정란희 시인의 시가 아닌 여러 사람들의 시가 적혀 있어요. 모두 제목은 "당신 마음의 볕으로 내 바람벽은 따뜻했습니다"예요.
N행시. 제목의 글자 하나하나가 각 행의 첫 글자가 되는 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석 자로 3행시를 만들어 보듯, 누구든지 N행시를 적어볼 수 있어요.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숨겨진 마음의 언어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어요. 이 시집 덕분에 자신만의 시 한 편을 써본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니까요. 오늘만큼은 따뜻할 것 같아요. 내 마음의 볕으로 당신의 바람벽도 따뜻하길 바란다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졌나봐요. 아낌 없이 마음의 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