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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평점 :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는 걸,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어요.
<노라와 모라>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오래 달리기의 마지막 한 바퀴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글쎄요, 그건 오래 달리기를 할 때 어떤 기분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네요. 어쩌면 누군가는 왜 이 소설에서 오래 달리기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어요. 순전히 나만의 감상일 뿐인 거죠. 그러니 이 책을 펼쳐 보는 건 오로지 그 사람의 선택인 거예요.
책 띠지에 적혀 있는 문구에 끌렸어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
- 김숨 (소설가)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소설"
- 누구의 말일까요?
'함께'라는 단어와 '온기'라는 단어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어요.
아하, 따뜻한 내용이겠구나, 라고.
그러나 여기서 또, 생각의 차이를 잊고 있었네요. 혼자라서, 너무나 쓸쓸해서 반대의 상황이 절실해질 수 있다는 걸.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성은 노 씨이고, 이름은 라, 그래서 노라. 성은 양 씨이고, 이름은 모라, 그래서 양모라.
두 사람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야기.
노라의 엄마가 모라의 아빠와 재혼하면서 두 여자애는 자매지간이 되었어요. 칠 년을 함께 살다가 헤어졌고, 그 뒤 20년만에 만나게 된 이야기.
한때 가족이었다가 남남이 된 사이인데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는 건 십중팔구 부고.
모라가 전화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죽음이 우리를 만나게 하다니. 우리는 만난 게 맞을까.
모라에게 다가서며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언제나 눈을 감은 자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영영...... 알 수 없는 것."
- 노라 (73p)
처음엔 노라 입장에서 모라를 봤기 때문에 노라가 가엾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반대로 모라 입장에서 노라를 봤더니 모라가 너무 불쌍했어요. 노라와 모라는 같은 방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몰랐던 거예요.
말하지 벗않으니 보이는 것만 봤고, 본 대로 판단했으니 서로 가까워질 수 없었어요. 각자에겐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 그들은 쉽게 말하고 쉽게 지치다가 뭐든 쉽게 포기했다.
이를테면 사랑이나 우정, 혹은 예의나 도덕 같은 거.
그러니까 나에게 그래도, 라는 말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하는 말에 불과한 말이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넌...... 모르잖아, 아무것도."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한다.
노라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또한 흔치 않은 일이다.
...... 미안. (139-140p)
속사정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어쩌면 진짜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냥 서로 몰랐으니까, 모르는 채로 쿨하게...
집요하게 서로에게 달려들다가 상처를 내느니, 적당한 거리와 벽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
노라와 모라의 이별 장면처럼.
버스를 타기 직전에 노라는 볼펜을 내밀며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고,
메모지를 찾는 모라에게 노라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이밀며 그냥 여기다 써줘,라고 했어요.
모라는 노라의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으며 말했어요. 너무 애쓰지 말자고.
그 뒤로 노라는 가끔 가슴에서 뜨겁거나 서늘한 마음이 치솟을 때면 모라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해요. 아니, 자신의 손을 찍은 사진. 거기엔 모라의 메일 주소가 찍혀 있어요.
꿈속에 다녀간 누군가를 떠올리듯이, 누군가 다녀갔다고 여기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있다고 말이에요.
노라는 그것을 '한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라에게 그 사진 한 장을 보냈어요. 모라의 글씨가 적힌 노라의 손바닥 사진. 이제 그 사진은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이 되었어요.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 노라 (197p)
뭐가 그리 어려운 거라고, 노라와 모라는 20년만에 재회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그건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저 불친절한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애썼을 뿐이라고.
이제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