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연쇄살인사건의 생존자, 사건 이후의 삶...


<블랙 아이드 수잔>의 주인공 테사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연쇄살인사건 '블랙 아이드 수잔' 네 명 중 한 명이에요.

운이 좋았던 단 한 명의 생존자.

이 소설은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현재의 테사와 과거의 테시.

그리고 또 하나, 연쇄살인범으로 붙잡힌 테렐 다시 굿윈의 무죄를 주장하며 6년 동안 테사를 괴롭혀온 앤젤라가 있어요. 앤젤라는 텍사스 주정부의 압력으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는 데 자기 인생의 마지막 절반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전부를 쏟아부은 사람이에요. 테사는 아홉 달 전, 앤젤라의 사무실에 가본 적이 있어요. 앤젤라는 테사에게 기억을 되찾아 준다는 전문가들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호소했어요. 그러다 그녀는 산더미 같은 테렐 다시 굿윈 사건 관련 기록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어요. 그녀가 죽은 그 주 내내 테사는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제야 테사는 깨달았어요. '앤젤라는 내게 묶인 고삐 중 하나'라는 것을, 나를 포기하지 않은 몇 사람 중 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앤젤라의 사무실에 연락했고, 그녀의 동료 변호사 빌이 법의학자 조애나 세거 박사와 함께 집으로 찾아 왔어요.

그들은 테사에게 물었어요. 왜 갑자기 자기들 편에 서기로 했는지. 

그 이유는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꽃 때문이었어요. 연쇄살인사건의 이름이 되었던 그 꽃은 여자들의 시신 더미 옆에 잔뜩 피어 있었어요. 1995년 당시 열일곱 살 테시의 증언으로 테렐 다시 굿윈은 연쇄살인범으로 확정됐고 사형수가 되었는데, 판결 이후 테시의 집 마당에 누군가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았어요. 땅 밑에는 협박 편지도 남겨 놓았어요. 네가 입을 열면 리디아를 수잔으로 만들겠다는 경고의 메시지. 리디아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테사의 단짝 친구예요. 그때는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17년이 흐른 지금 또 누군가가 테사에게 보란 듯이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았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리디아에게서 보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과연 블랙 아이드 수잔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어디에 숨어서 테사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면, 테렐 다시 굿윈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예요. 그의 사형집행일이 확정된 상태여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테사는 비혼모로 열네 살의 딸 찰리와 둘이 살고 있어요.

문득 딸 찰리를 볼 때마다 과거의 공포가 밀려와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해요.

사람들은 끔찍한 비극을 겪은 이에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해요. 하지만 그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나 비극적 사건의 생존자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따뜻한 시선인 것 같아요. 생존자를 구경거리로 여기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보는 마음. 

 

알고 있었다. 블랙 아이드 수잔이 된 이후 내 인생에 대한 온갖 과장된 기사란 기사는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사 속에서 엄마는 '미심쩍은' 정황에서 사망했고, 할아버지는 으스스한 집을 지었으며, 나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하지만 사실은? 엄마는 희귀한 뇌졸중을 앓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미치광이였으며, 나는 절대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여주인공들은 일단 전부 피해자긴 하지만.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었고, 신데렐라는 노예처럼 일했고, 라푼젤은 감옥에 갇혔고...

테시는... 뼈와 함께 버려졌다.

어느 괴물의 뒤틀린 판타지 때문에.   (160p)


1995년 테시는 사건 현장에서 구조된 이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리디아는 늘 테시 곁에 있어줬어요. 오랜 단짝 친구였으니까.

리디아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라서 감정을 밀어두고 테시에겐 없는 냉정한 시각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는 능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테시의 담당 의사가 바뀔 때마다 분석하기를 좋아했어요. 직접적으로 사건에 대해 물은 적은 없지만 리디아는 유난히 죽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테시는 리디아가 지켜보고 있으면, 나는 죽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테시가 누런 밀랍 인형 같은 모습으로 관 속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는 동안 리디아는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네 엄마는 저기 없어. 

그토록 친했던 리디아. 그런데 얼마 뒤 리디아 가족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어요. 도망치듯,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나는 아직 여기 있다 I am still here." ​ (230p)


현재의 테사는 삼십 대 중반의 엄마가 되었어요. 여전히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더 이상 연약한 소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녀는 이제 지켜야 할 사랑하는 딸 찰리가 있어요. 테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준 딸 덕분에 강인한 엄마가 되었어요. 사랑이란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으론 비뚤어진 사랑도 존재한다는 게 현실의 비극인 것 같아요. 사이코패스...


<블랙 아이드 수잔>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추적기이자 생존자의 이야기예요.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테렐은 흑인이었어요. 약자에 대한, 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든 비극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테렐과 같은 경우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 씨가 올해 재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어요. 그는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들에 대해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용서는 이런 경우에 해당될 거예요.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현재의 테사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장면 중에서]


"그를 용서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내 눈은 아직도 칠판의 꽃에 못 박혀 있었다. 

직접 지우개를 들고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문지르고 싶었다.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다.

"그러면 종결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표현하죠.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만약에 그가... 당신은 그를 뭐라고 부르나요?"

"나의 괴물." 수치스러움에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와서 박사가 들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정신도 멀쩡한 성인 여자가 아직도 괴물 이야기를 하다니!

"좋아요. 당신의 괴물이 바로 지금 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그가 자리에 앉았어요. 모든 것을 자백했어요. 당신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이름도 알고, 어디서 자랐는지, 어머니가 그를 사랑했는지,ㅅ 아버지에게서 얻어맞았는지, 고등학교 때 인기가 많았는지, 개를 사랑했는지, 개를 죽였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가 바로 저기, 1미터 떨어진 의자에 앉아서 당신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달라질까요? 당신을 만족시킬 대답이 있을까요?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나는 의자를 응시했다.

엉덩이에 찬 총이 철제 쿠키 커터처럼 피부에 느껴졌다. 그 총을 들어 의자의 천에 대고 쏴버리고 싶었다. 흰 솜이 폭발하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나는 내 괴물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가 죽기를 원했다.  (268-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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