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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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는 민지 님의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수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일 뿐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꼭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기억해내길 바랍니다. 그들이 진짜 양심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러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리도 없을 테니까. 그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다면 이제 이 책을 통해 똑똑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에 만났던 그들.

그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고, 그들이 데려간 곳은 석촌 호수 근처에 있는 선배 집이었습니다.

... 6년이 지난 그때에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저자와 친구는 그 날의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애써 모르는 척, 잊은 척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잊지 못한다.

그 남자,

나를 지켜보던 그 남자,

그 남자의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남자의 머리카락과

그 남자의 얼굴과

그 남자의 눈빛과

그 남자의 손가락과

그 남자의 무릎과

하얀 양말을 신은 그 남자의 발을,

나는 잊지 못한다.

   (16p)


책 속에 나오는 내용들은 저자가 직접 겪은 일들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저자는 그때 그 일 이후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줄에 이어 두 번째 줄이 생겼고, 세 번째, 네 번째... 점점 많은 줄들이 일렬횡대로 새겨졌다고. 

피가 흐를 정도만, 딱 그 정도까지만.

자해를 하는데 왜 아프지 않는지가 스스로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니,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해하는 순간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라서 고통을 덜 느끼게 된다고 적혀 있더랍니다. 

저자는 그동안 만났던 의사가 대략 열 명 정도인데, 자신이 왜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지 그 원인을 물어봤더니 의사마다 말이 달랐다고 합니다. 어떤 의사는 어릴 때부터 자라 온 가정환경 탓이라고 했고, 어떤 의사는 열네 살의 그 사건 때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의사는 선천적으로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다르게 나와서일 거라고도 했습니다. 병의 원인이 너무 복합적이어서 어느 것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금의 주치의도, 과거의 의사들도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저자는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한 채 정처 없이 헤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진단을 받은 지 16년, 십대 소녀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상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 상처가 소녀의 삶을 병들게 했습니다.

왜 소녀는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 그때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별합니다.

드디어 저자가 말하기 시작했으니까. 경계성 성격장애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으니까.


"말 못 할 상처를 품고 사는 이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계절에......"

   - 민지 올림


이 책을 덮으면서 저자에게 할 말이 생겼습니다. 

당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러니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나'가 아니라 '민지'로서의 삶을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상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상처를 낸 자가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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