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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갇힌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평점 :
웬만한 미드보다 더 몰입감 최고인 소설이에요. 불행한 과거에 갇혀 있는 주인공이 현재를 살기 위해 살인자를 추적하는 이야기예요.
그동안 읽었던 형사 시리즈물 주인공 중에서 가장 묘하게 끌리는 캐릭터였어요.
겉보기엔 마블 히어로 같은데, 내면에는 날개가 부러진 새 한 마리가 있는 것 같아서 안쓰럽고 슬펐어요.
절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갖고 산다는 건 너무나 끔찍해요. 그러나 그 고통의 주인공은 자신의 고통에 함락되지 않고 도리어 타인을 구원해주네요.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주인공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네요.
여기 묘지 앞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어요.
195센티미터의 키에 100킬로그램을 넘나드는 체중의 산 같은 덩치의 소유자.
그의 이름은 에이머스 데커.
<진실에 갇힌 남자>의 주인공이에요. 40대 중반인 데커는 지금 고향인 오하이오 주 벌링턴에 돌아와 있어요.
매년 딸 몰리의 생일마다 고향에 돌아와요. 정확히는 딸 몰리와 아내 캐시가 묻혀 있는 묘지를 찾아오는 거예요.
한 쌍의 무덤 옆에 놓인 벤치는 벌링턴 경찰서에서 기증한 거예요. 데커가 처음에는 순경으로, 나중에는 강력계 형사로 몸 바쳐 일한 곳.
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FBI 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알렉스 재미슨이 있어요. 원래 기자였던 재미슨이 정식으로 FBI 연수를 마치고, 데커가 속해 있는 특수팀에 복귀하며서 파트너가 되었어요. 데커는 4년 전, 가족의 죽음이 오늘 일어난 일처럼 또렷하고 강렬해요. 그건 감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완벽한 기억력 탓이에요.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증상은 그가 NFL 경기장에서 무시무시한 기습 공격을 당해 입은 뇌 부상의 후유증으로 시작되었어요. 누군가는 이 놀라운 능력을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어요. 기억이란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아주 고통스러운 것까지도 세세하게 다 떠오르니까 견딜 수 없는 거예요.
데커에게 병색이 완연한 노인이 다가왔어요. 그는 자신을 메릴 호킨스라고 소개했어요.
13년 전, 데커과 옛 파트너 메리 랭커스터가 함께 처음 맡았던 살인 사건의 용의자 메릴 호킨스.
네 명을 죽인 살인자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는데, 그가 어떻게 풀려난 걸까요.
호킨스는 췌장암 말기라서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했어요. 자신을 체포했던 형사 데커를 찾아온 이유는 뭘까요.
"당신은 날 감옥에 넣었어. 하지만 당신이 틀렸어. 난 무죄야." (14p)
데커는 호킨스의 말을 무시했지만 다음날 그의 거처로 찾아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됐어요. 그가 유죄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왜냐하면 누군가 호킨스를 죽였기 때문이에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남자를 누군가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죠.
결국 데커는 FBI 임무로 돌아가지 않고 벌링턴에 남아 범인을 추적하게 돼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이후 데커에게는 삶의 의미가 사라졌지만 형사로서의 임무는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그는 처음 맡았던 사건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고, 그로 인해 선량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어요. 호킨스는 죽기 전에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싶어했는데, 진짜 범인이 호킨스마저 살해한 거죠.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데커가 호킨스의 죽음으로 13년 전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연이은 살인 사건과 사고들이 터지게 되고... 급기야 데커마저 죽을 뻔 하는데.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요. 끝까지 포기 하지 않는 데커의 집요한 수사 끝에 결국은... 결말은 늘 씁쓸한 것 같아요.
인간은 정말이지 흥미로운 존재야. 데커는 차에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때로는 진실과 개소리를 도무지 구분하지 못한다.
때로는 그러기를 거부한다.
그냥 거짓말을 믿는 쪽이 더 편할 경우엔 말이다. (156p)
"...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어요. 에이머스.
당신이 기억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자, 난 그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걸 알아요.
그리고 당신 가족과, 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을 감안하면 그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이죠.
하지만 그 모든 좋은 것들은요? 그 모든 행복한 시간들은?
당신은 그것들 역시 방금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잖아요. ..."
데커는 마침내 마스를 보았다.
"그게 바로 그렇게 힘든 이유예요, 멜빈."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난 언제고 아주 분명하게,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인식할 겁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요, 젠장."
자리에서 일어난 마스는 친구 옆에 가 앉아서, 데커의 넓은 어깨에 커다란 팔을 둘렀다.
"그리고 그게 바로 사람들의 인생이라 부르는 거죠, 친구.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추한 것.
하지만 나머지 둘 때문에 처음 게 위축되게 만들지는 말아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건 처음 거니까요.
그걸 계속 지켜내면, 친구, 당신은 모든 걸 제압할 수 있어요. 그게 불변의 진리죠."
두 남자는 침묵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흔히 그런 식이니까. (209-210p)
"난 그저 진실에 다가가려 애쓰는 것뿐이에요, 레이첼. 그게 다예요."
"하지만 진실이 늘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안 그래요?
때로는 우리를 가두기도 하죠." (36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