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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좋은 아침이다, 하이람." 아버지가 말했다. "잘 지내냐?"
"네, 주인님." 내가 말했다. (48p)
이 장면을 읽으면서 헉, 숨을 삼켰어요.
어린 소년 하이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불러요. 그 이유는 하이람의 어머니 로즈가 흑인 노예였기 때문이에요.
더욱 끔찍한 건 아버지가 하이람의 어머니 로즈와 이모 에마를 팔아버렸다는 사실이에요.
하이람은 매우 특별한 아이예요. 걷기 전에 말문이 트였지만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지켜보고 기억했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린다기보다 보였고, 그 말이 눈앞에서 그림처럼 형태를 갖추었어요. 하이람은 언제든지 이미지를 가져와,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단어로 정확히 다시 번역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하이람은 한 번 들은 이야기는 전부 기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단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어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팔려 갔을 때의 장면이 전혀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아요. 어떤 기억도 나지 않아요. 어머니의 얼굴조차도.
그러다가 그녀를 구스 강의 돌다리에서 봤어요. 유령 같은 푸른 빛으로 감싸인 춤꾼.
그녀는 다리 위에서 타닥타닥 주바*를 추고 있었어요. 머리에는 흙빛 항아리를 얹어놓은 채로, 마치 그 항아리는 왕관처럼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하이람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주바를 추는 그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주바 : 미국 남부 흑인 노예의 춤이다. 지그 gigue 같은 춤에 엉덩이의 움직임을 강조한 아프리카 춤이 가미되면서 만들어졌다.)
아버지 하월 워커는 일찌감치 하이람의 총명함을 알아봤어요. 열세 살이 된 하이람은 거대한 저택 밑, 일명 토끼굴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지냈어요. 아버지의 서재에서 하이람보다 나이가 많은 백인 소년을 보았고, 그가 이복 형임을 즉시 알아보았어요. 아버지는 형의 가정교사 필즈 씨에게 글을 배울 수 있게 해줬어요. 일주일에 세 번씩 한 시간 동안, 언제나 메이너드 다음에 수업을 받았어요. 그리고 얼마 뒤 그 수업이 목적이 드러나면서 끝나버렸어요. 하이람에게 주어진 의무, 그건 메이너드라는 노역을 맡는 것. 그 후로 인생의 7년을 그의 개인 하인으로 보내야 했어요. 메이너드가 구스 강에 빠진 그 날까지.
하이람 곁에서 엄마처럼 돌봐준 아줌마 테나는 조심하라고, 꼭 기억하라고 했어요. 저들은 네 가족이 아니라고.
테나는 하이람에게 뭔가를 말해주려고, 앞으로 닥칠 위험을 경고하려고 했지만 어린 하이람은 미처 몰랐어요. 그의 재능은 기억력이었지 지혜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메이너드와 함께 구스 강에 빠져 죽을 뻔한 그 순간에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돼요. 어머니가 눈앞에서 너울거리는 모습을, 고리 안에서 물의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 푸른빛 안에 평화를 느꼈어요. 어른들 말이 우리에게도 진짜 고향이 있다고, 노역을 넘어선 삶이 있다고 했어요. 고향에서는 모든 순간이 산 너머로 떠오르는 햇살 같다고 했어요. 하이람의 할머니는 순혈 아프리카인이었고, 산티 베스라는 이름으로 통했어요. 그분이 아프리카 이야기를 어찌나 잘 풀어내던지 가끔 첫서리가 대초원의 열기처럼 느껴지는 일도 있었대요. 이야기꾼 베스의 재능은 아주 소중하게 여겨졌대요. 이야기에 따르면, 베스가 어느 날 밤 하이람의 엄마를 찾아와서 엄마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대요. 엄마와 자신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에서 태어났다면서. 그날 밤 베스는 한겨울의 강으로 걸어 내려가더니 사라졌대요. 혼자가 아니라 노역자 마흔여덟 명이 대농장에서 걸어 나와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대요. 그들 모두가 순혈이었대요, 산티 베스처럼. 그걸 인도하는 힘이라고 부른대요. 기관사가 기차를 이끌듯이, 수많은 다리들, 수많은 이야기들, 강을 건너는 방법이 인도예요. 노예선에서조차 사람들이 파도로 뛰어들어 옛 아프리카의 집으로 다시 인도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대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을 미국 백인들은 짐승 취급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존재들이었어요.
<워터 댄서>를 읽으면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꾹 눌러야만 했어요. 하이람은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일뿐 아니라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인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라클라스를 탈출하지만... 엄청난 시련을 겪고 난 뒤에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구출되었어요. 언더그라운드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비밀 조직이에요. 노예 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진정한 자유를 찾지 못한 하이람은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힘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돼요.
참으로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어요. 과연 자유란 무엇일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