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30년 기념집, 개정증보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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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거리를 걸어봤다면 한 번쯤 보았을 거예요.

광화문글판.

일 년에 네 차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입는다고 해요.

무심코 바라본 글판의 짧은 문장에서 감동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는 광화문글판 3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에요.

1991년 처음 광화문글판이 걸렸고,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이 책에는 글판에 실린 문장들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어요.

광화문글판으로 선정된 문장들의 출처를 보니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작품부터 노래가사, 명언, 영화대사까지 다양하다고 해요.

어떻게 문안을 선정하는지 궁금했는데,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있어서 선정위원이 각자 발굴한 글귀와 시민이 응모한 글귀를 종합 심의해 선정한다고 하네요.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택된 문장이라고 하니, 그 노고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30년 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광화문글판들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모두 만날 수 있어요.

어떤 문장이 가슴을 콕 찔렀나요?

아무래도 이 책을 읽다보면 저마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 있을 거예요. 

광화문글판의 문장들과 그 문장의 원문이 같이 실려 있어요. 저한테는 다음 문장이 참 좋았어요.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2016년 가을   (158-159p)


원문은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이라는 시 일부였네요.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요즘 제 마음이 가을을 타고 있었는데, 슬며시 곁에 내린 낙엽 하나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시인을 통해 깨달았어요.

아하, 고마운 일이었구나.

잠시 잊고 있었나봐요. 조용히 내 곁을 둘러보니 고마운 일이 많다는 걸.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낙엽 하나가 고맙고 이 가을이 고마웠어요.


여기에 원문뿐 아니라 그 시를 쓴 시인들과의 인터뷰가 나와 있어요. 광화문글판의 문장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면, 그 원문을 쓴 시인의 이야기는 온기처럼 퍼지는 느낌이었어요. 감동은 마음과 마음이 뜨겁게 만나는 일인 것 같아요. 


"... 제가 가만히 좋아하는 것들은 길모퉁이 아무도 안 보는 시멘트 틈 사이로 피어올라온 어린 풀잎들, 

또 어째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작은 돌멩이들, 그리고 공원 같은데 아무 표정 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노인에게 깃들어 있는 긴 생애,

도시의 삶 속에서 쉽지 않지만 문득 찾아오는 고요 같은 시간들이에요. 그 속에서 묵묵하게 가만히 있음이 소중해요.

깊은 연민과 공감이 식지 않는 가운데 서로 이루어지는 존재의 영역들이나 차원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런 것들은 제게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우리 삶을 살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56-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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