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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선물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송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9월
평점 :
어디를 찾아봐도 마음의 어둠을 비추는 말이 보이지 않을 때...
<말의 선물>은 마음을 담아낸 말에 관한 책이에요.
저자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일본의 젊은 비평가이자 수필가라고 하네요.
요즘처럼 말의 홍수 속에서 살다보면 말이 가진 힘을 종종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일상에서 평범한 말이 어떻게 소중한 말이 되는지, 말 속에 숨어 있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그 중 아버지에 관한 일화가 마음에 남네요. 2012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꽤 많은 책을 구입하셨다고 해요. 읽기를 즐기는 건 물론이고 사는 데도 강한 열정을 갖고 있어서, 만년에 눈이 안 좋아져 읽기가 불편해진 뒤에도 매월 수만 엔어치의 책을 샀대요. 저자를 포함하여 형제 셋이 매월 돈을 보내드리던 상황이라 살림에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왜 읽을 수도 없는 책을 그토록 많이 구입했던 걸까요. 어느 날 가족끼리 의논해서 아버지에게 책을 그만 사시라고 제안해보기로 했고, 그 임무는 막내아들인 저자의 몫이 되었대요.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물러서지 않더래요. 결국 아들이 포기했대요. 이건 뭔가가 있구나 싶어서.
얼마 뒤 회사 동료에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 동료가 "읽을 수 없는 책은 읽을 수 있는 책보다 소중한지도 모르겠는걸" (60p) 하고 툭 말하더래요. 읽고 싶은 마음은 읽을 수 없는 책을 살 때가 더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대요. 독서관만이 아니라 세상 사물과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경험이었다고 해요. 책은, 읽는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것일 수도. 책은 거기에서 하나의 말을 찾아낼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하나의 말에도 인간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 숨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네요.
다시 아버지로 돌아가 보면, 저자에게 아버지는 문학의 스승 중 한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버지로부터 배웠으니까. 그래서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하게 느낀다는 거예요. 여기서 '함께'라고 한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아버지의 조력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거라고 느낀대요. 어쩌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멋진 유산을 남겨주신 건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선물인 것 같아요.
저자를 통해서 책을 읽는 일, 글을 쓰는 일, 말하는 일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쓴다는 것은 말을 개화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야기할 수 없는 '말'을 써서 말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보석을 발견한다.
말은 살아 있다.
그래서 그것에 닿았을 때 우리 마음의 현弦 이 울린다.
심금心琴 이라는 말도 그런 '말'에 감동한 이가 발견한 표현이리라." (13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