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한 유산 - 8명의 가족이 다 때려치우고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난 이유
제준.제해득 지음 / 안타레스(책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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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없을 여행기.

이 책에서 다음 문장을 보면서 느꼈어요.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을까?"  (10p)


2020년 8월, 가족여행은 고사하고 모이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어요.

물론 이러한 상황은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에요. 아무도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칠지 몰랐으니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건 아닌지.


<위태한 유산>은 8명의 가족이 함께 떠난 40일간 미국 횡단 여행기예요.

이 책의 저자와 부모님, 큰 매형과 큰누나, 작은 매형과 작은누나, 태어난지 22개월 된 조카까지 모두 여덟 명의 가족이 주인공이에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9년 4월, 미국 서부에서 캠핑카로 시작해 미국 동부, 캐나다, 하와이까지 함께 한 여행의 시간들이 글과 사진으로 남았네요.

아마 가족여행을 떠나본 사람들이라면 여행이 늘 핑크빛이 아니란 걸 짐작할 거예요. 여행에서 가장 설레고 좋았던 순간은 여행가기 전 날이라는 말이 있어요. 농담반 진담반. 그만큼 여행은 자발적인 고행, 즉 고생길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직접 떠나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어요.

바로 이 책 속에.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떠나야 한다. 

여행 생각에 큰 심호흡으로도 심장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행을 짝사랑하는 것이고,

여행 중에도 여행을 그리워한다면 이미 여행과 사랑을 하는 것이며,

여행에서 막 돌아왔을 때 바로 다음 여행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행에 중독된 것이다."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김황영,2013)에서 나온 이 말이 참 좋다.  (46p)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한 풍경에 감탄한 가족들은, 캐니언이 왜 5분 캐니언인지 알게 되었대요.

처음 봤을 때 5분 정도는 정말 멋진데, 익숙해지고 나면 금방 지루해진다고.

그러나 그 5분을 위해, 그 5분은 캐니언으로 떠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고.

기나긴 세월과 비교하면 5분은 너무나 짧은 찰나일 수 있지만 정말 멋진 5분이라면, 나 역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이유가 될 것 같아요.


"우리가 남이다."

이 말이 맞다. 남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기대하고, 더 크게 실망한다.

옆 캠핑카에 얼굴도 모르는 낯선 외국 사람이 커피 한 잔 먹으라고 인사를 건네면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감탄하지 않을까?

... 멋있고, 고맙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남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친절을 베풀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 아내는, 남편은, 딸은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정해 놓은 기준이 이미 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이렇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설정의 오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168-169p)


화목한 가족이 여행을 떠났다가 대판 싸우고 돌아왔더라는 이야기. 

굳이 멀리 찾지 않아도 다들 그런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거예요.

<위태한 유산>의 가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대판까지는 아니고 소소한 싸움들. 그러나 결국에는 화해하고 더욱 끈끈해진 것 같아요.


2019.5.19

엄마 : 가만 보면 우리 집처럼 오픈된 집도 없을 거야. 그치?

큰 매형 : 맞아.

엄마 : 여행을 통해 너무 가까워져서 서로에게 실망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젠 실망할 것도 없어서. (뿡)

큰 매형 : 에이, 알고 지낸 시간이 길잖아요. 이젠 어머니 방귀도 익숙해요.  (173p)


슬며시 웃음이 났어요. 현실가족의 모습.

좁은 캠핑카에서 40일간 지내다보니 너나 가릴 것 없이 방귀를 트게 되면서 캠핑카는 "뿡카"라는 별명이 생겼다네요. 그 독한 가스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이, 그 이름은 가족.

여행은, 지금 우리 모두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비행기 타고 멀리 떠나는 가족여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온전히 함께 하는 가족의 시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디를 가지 않아도, 바로 여기 우리집에서 가족끼리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부터 소중하게.

위태한 유산이 된 가족여행이 보여준 것처럼, 위태로운 지금 시기를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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