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아마릴리스 폭스.
인생에는 여러 갈림길이 등장해요.
만약 그녀가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죠.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이야말로 운명이 아닐까.
옥스퍼드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1년 미루고, 그녀가 선택한 일은 버마 국경의 난민들을 돕기 위한 자원 활동이었어요.
엄마에게 받은 졸업 무도회의 드레스 값으로 태국행 항공권을 샀어요.
난민 캠프에서 민 진이라는 버마의 반체제 작가를 만났고, 1999년 9월 9일로 예정된 시위를 촬영하고 전 세계에 알려줄 것을 부탁받았어요.
자유 버마를 위한 컨퍼런스에서 알게 된 영국 남자 대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위장 결혼증명서로 버마에 입국하여, ASSK(아웅 산 수 치)를 만났어요.
수 치와의 인터뷰 이후 군인들에게 잡혀 수감되었다가 겨우 풀려났을 때, 안도의 눈물과 함께 남겨진 죄수를 향한 슬픔의 눈물을 흘렸어요.
그녀는 수 치의 말들이 담긴 필름을 무사히 방콕까지 가져왔어요. 약속대로 BBC 라디오 방콕 지부를 찾아가 수 치의 인터뷰를 버마에 단파로 방송해주길 요청했고, 버마 밖에서 거의 1년 만에 수 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어요. 랑군 시민들에게는 그 목소리가 새로운 강령이며 저항의 불꽃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을 단순히 관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변화시키는 황홀감을 맛보았다는 그녀는, 이때 살아 있다는 걸 느꼈던 첫 경험이라고 했어요.
대학으로 돌아온 그녀는, 버마에서의 추억이 위로가 아닌 절망의 원천이 되었어요.
자신이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동안에도 버마의 학생들은 군부에 의해 파리 목숨처럼 스러져가고 있으니.
세상의 아픔을 느끼며 사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왼쪽 손목에... 다행히 친구가 발견해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
친구는 그녀에게 쿵푸를 배워보라고 했어요.
"이봐, 애송이. 넌 쿵푸를 배워야겠다.
세상의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는 거잖아? 퍽!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크게 반응하는 거지.
그런 충격을 일일이 다 받아들이면 매번 쓰러지고 말거야. 하지만 쿵푸 고수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을 바로 다음 동작으로 돌려버려.
강한 공격을 받을수록 더 큰 힘을 실어 보낼 수 있지. 너도 쿵푸를 연습해봐. 그럼 슈퍼 파워로 무장할 수 있을 거야." (107p)
그 뒤로 자기 자신에 대해 고통을 소화시켜 행동으로 변환시키는 컨버터로 의식하게 되었어요.
2학년이 되었을 때, 은밀하게 접근하여 비밀 요원을 제의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그녀는 졸업 후 태국 난민 캠프에서 일하기로 진로를 정했으니까.
옥스퍼드에서 마지막 학기를 앞둔 2001년 가을, 그녀는 엄마와 여동생들을 보러 워싱턴 D.C.의 집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9.11 테러를 목격하게 됐어요.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는 끔찍한 광경.
이대로 태국에 간다면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외면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태국행을 취소하고, 조지타운 외교대학의 갈등과 테러 연구 석사과정에 지원했어요.
마침 조지타운에 상주하고 있던 CIA의 임원이 그녀를 발견했고, CIA 요원이 되었어요.
<언더커버>는 단순히 CIA 요원의 회고록이라고 하기엔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흥미로울뿐 아니라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였어요.
어린 시절에 엄마의 가르침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학창 시절에 역사 선생님이 건네준 책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인 것도 운명 같아요.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월든』은 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정직한 노동과 양심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말해주는 책이었다고, 그래서 오랜만에 물위로 나온 수영선수가 숨을 들이키듯 그것을 들이마셨다고 해요. 놀라운 경험이죠. 학교 또래 아이들은 파벌을 나누고 명품 핸드백을 뽐내는데, 이런 책을 손에 든 것만으로도 혁명처럼 느꼈고, 그가 쓴 다른 책을 찾다가『시민 불복종』을 집어 삼키듯이 읽었다고 해요.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침실 벽에 적어둘 만큼 그녀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준 거예요.
십대 시절에 무엇을 읽고, 경험하느냐가 이후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녀를 통해 확인한 것 같아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충격적이고 놀라운 비밀 요원의 삶뿐 아니라 그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 큰 감동이었어요.
"우리의 궁극적인 의무는 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옳다고 믿는 일을 실천하는 것" (5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