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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평점 :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자림 삼나무가 잘려나간 사진을 보았어요.
잎사귀와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나무 몸통만 남긴 채 쌓여 있는 모습이 처참했어요.
수많은 삼나무들의 생명을 앗아간 이유는 길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뭔가 잘못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으로 보자마자 제목 때문에 끌렸어요. <나무의 말>, 만약 나무들이 말할 수 있다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나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들에 관한 기록이었어요.
저자 레이첼 서스만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현대 예술가라고 해요.
그녀는 10년간 세계 곳곳에서 2,000년 넘게 살아온 생명체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사진 찍을 대상들을 찾으러 가기 전에 그게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봤다고 해요. 오래 산 나무의 목록은 쉽게 찾았지만 다양한 생물종은 여러 전문 분야의 과학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하나씩 목록을 만들어갔다고. 그녀는 예술가로서 과학적으로도 유이미한 가치를 지닌 프로젝트를 완성해냈어요.
바로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그 결과물이에요.
각 사진의 제목은 해당 생물의 이름, 사진 찍은 날짜, 분류 번호, 나이, 위치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자체가 현장 노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진은 6×7 중형 필름 카메라로 자연광만 써서 촬영했고, 각 생물의 실제 크기와 상관없이 출력한 사진을 실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사진을 통해 실제 크기를 가늠하는 것보다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아마 책 속 사진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면서, 할 말을 잃을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기껏해야 백 살 정도 사는 인간들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해왔구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 화이트 산맥의 브리슬콘 파인은 5,000살 정도 추정하는데, 단일 단위 생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종으로 알려져 있어요.
웅장한 나무의 자태가 세월을 느낄 수 있어요. 근래 고산 지대에 기후 온난화로 인해 브리슬콘의 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고 해요. 최근 나이테 분석에 따르면 성장 속도가 지난 50년 사이 30퍼센트가 빨라졌는데, 이전 3,700년 동안 이런 성장 속도를 보인 적이 없다고 하네요.
모하비 사막의 크레오소트 관목과 유카 군락은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미미한 속도로 확장해왔는데, 근래 유카 군락은 쇠약해져 있었다고.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한 번만 찍은 사람들은 그 풍경이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끼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사라져가는 빙하 사진은 한두 해 전의 사진과 나란히 보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사진은 시간의 흐름 속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기록일 뿐이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지구 생물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유기 생명체가 지질학적 시간 단위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주제인데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그 심원한 시간의 틀로 생명체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지난 5년 사이에 책에 등장하는 초고령 생물들 중 둘이 생명을 잃었다고 해요. 저자는 유네스코가 이들을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지정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우리 역시 관심을 갖고, 기후 변화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