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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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부인은 매일 밤 경주 심판으로 저희를 돕는답니다.

부인이 아니었으면 경주를 치르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대회가 마음에 드시나요, 부인?"

로키가 허리를 숙여 부인에게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갔다.

"바짝 긴장한 것 좀 봐. 지금 저 여잔 머리가 백지장일 거다, 멍청한 여편네." 글로리아가 중얼거렸다.

"네. 마음에 들어요." 긴장한 레이든 부인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가장 응원하는 커플이 있나요, 부인?"

"22호 커플, 로버트 시버튼과 글로리아 비티요."

"부인께서 가장 응원하는 커플은 조너선 비어의 후원을 받는 22호라는군요! 부인, 저 커플이 우승하셨으면 하는 거죠?"

"네. 그리고 제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직접 대회에 참가했을 거예요." 

   (134-135p)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한 '나'는 로버트 시버튼이에요. 나의 파트너는 글로리아 비티.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가난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해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댄스 대회는 탈락하기 전까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간 거예요.

우승하면 만 달러 상금을 받는다고. 

한때 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으로 쓰인 대형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댄스 플로어가 있어요. 플로어를 둘러싼 세 면에 특별관람석이 있고, 그 뒤편으로 일반석이 이어져 있어요. 나머지 한 면에는 악단 무대가 들어섰고 저녁 시간에만 공연했어요. 낮 동안에는 확성기를 연결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어요.

144쌍의 남녀가 대회에 참가했는데 일주일 만에 61쌍이 기권했어요. 1시간 50분 동안 춤추고 10분 동안 쉬는 것이 대회의 규칙이에요. 원하면 쉬는 시간에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고, 면도하거나 몸을 씻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단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거예요.

바다에 말뚝을 박고 세운 다리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서, 발밑에는 파도가 쉬지 않고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와 글로리아는 처음이지만 대회에 참가해본 사람들이 조언하기를, 10분의 쉬는 시간을 빈틈없이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우승 비결이라고 했어요. 최대 고비는 첫 주였어요. 다들 발과 다리가 퉁퉁 부어 고생했어요.


처음엔 마라톤 댄스 대회가 장거리를 뛰면서 춤추는 건 줄 알았는데, 반대로 춤을 마라톤처럼 오랫동안 끝까지 추다가 최종적으로 남은 한 커플이 우승하는 대회였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대회를 개최할 걸까요?

참가자들이야 뻔하죠. 돈이 없으니까, 숙식 제공해주는 조건 때문에 참가한 거죠. 

놀라운 건 실제로 마라톤 댄스 대회 경기 영상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졌던 일이에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남녀가 서로 포옹한 상태로 춤을 추는데 동작이 거의 좀비 같았어요. 어기적어기적, 댄스 플로어 옆에 침대가 나란히 있어서 몇몇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바람몰이 역할을 맡은 사회자가 있고, 심판 두 명이 플로어를 돌아다니면서 참가자들을 감독하고 있어요. 

앗, 뭔가 익숙한 장면인데...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오디션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로 찍어서 대중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죠. 직접 관람하러 온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커플을 응원하거나 후원해요. 참가자들의 목표는 우승!

우스꽝스러운 이 모든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진지한 이유는, 바로 생존의 문제니까.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그들은 말을 쏘았다>라는 제목의 뜻을 이해하려면 끝까지 읽어야만 해요.

마지막 장면...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They Shoot Horses, Don't They?"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고 해요. 아하,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의미일 것 같네요. 정말 소름돋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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