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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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서 처음 말을 탄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상상할 뿐이죠.

그 상상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해내다니, 놀라울 따름이에요.


"이 세상은 저절로 펼쳐져서 처음부터 이러하고,

시간은 땅 위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초(草)나라 『시원기』의 첫머리에 적혀 있다." ​(11p)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의 첫 문장이에요.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 세상을 알지 못해요. 이미 세상은 존재했으므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해요. 초의『시원기』와 단의『단사』는 모두 제각각의 기록이라고 해요. 초와 단이 나하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싸웠기 때문에 그 기록들은 서로 부딪친다고 해요. 그리하여 저자는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 아무도 기록한 적 없는 말과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신월마는 본래 초나라 토종말이며, 초승달을 향해 달렸다고 하는데, 지금 신월마는 존재하지 않아요. 

어쩌면 유니콘처럼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게 아닐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같아요.

말 총총(騘驄)은 신월마 혈통의 푸른 말로 이마에 박힌 초승달 무늬가 있었다고 해요. 총총은 추의 딸 요(姚)와 눈이 맞아 살았는데 추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어요. 총총이 죽던 날 밤에 요는 마을에서 도망쳐 백산으로 들어가 무당이 되었대요. 백산에서 요는 생식기는 암컷이고 갈기는 수컷인 백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떠도는 말에 의하면 요가 백마와 교접해서 낳은 딸이라고 했어요. 요가 죽은 총총의 씨를 받아서 낳은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요는 백오십 살을 살았고 요가 죽은 뒤에도 요의 넋은 백산 북쪽 참나무숲에 머물고 있다고 이피기피의 부락민들은 이야기해요. 요는 모든 네발 짐승의 어미이자 수호신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의 아비 추가 했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추가 어떻게 총총의 잔등에 올라타서 말과 함께 달리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으나 그가 처음 말을 탄 아무개였다면 총총에게 한 짓은 어리석은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비참한 최후를 맞을 운명이었다고 해도 너무나 안타까워요.


가장 안타깝고 슬픈 건 토하와 야백의 운명인 것 같아요. 사람 간의 전쟁이지, 말이야 다툴 일이 없는 것을. 

토하(吐霞)는 신월마 혈통의 암말이며, 초왕 표가 왕자 시절부터 타던 말로 단나라와 벌인 전투에 나가 전공을 세워요.

야백(夜白)은 비혈마 혈통의 수말이며 단나라 군독 황의 전마로 여러 번 출전해요. 달릴 때 목덜미 핏줄로 피보라를 일으키고 밤에는 이마에서 푸른빛이 나요. 군독 황의 최후를 보고 스스로 이빨을 빼서 재갈을 벗어요. 야백은 죽고 죽이는 인간의 싸움을 보면서,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러나 인간은 말을 타면서 초원을 달리는 기쁨만 누리면 될 것을... 어리석은 중생이여...


"... 벌레들이 다 죽어도 벌레들의 초원에는 죽음이 없다고..."  (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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