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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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님의 신작 『여행의 이유』는 아직 읽지 못했어요.

그보다 먼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고 싶었거든요.

제목이 주는 힘이 컸어요.

마치 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기다렸던 것처럼, 이 책을 꼭 읽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역시나 읽자마자, '그래, 이거야.'라고 느꼈어요.


10년 전... EBS 여행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나를 찾아와 어디로 여행하고 싶으냐고 묻고

나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대답하는 장면.

생각해보면 내 많은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프롤로그, <언젠가 시칠리아에서 길을 잃을 당신에게> 2020년 4월 김영하


이 책은 10년 전 출간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개정판이지만, 그때와는 다른점이 있어요.

저자는 다시금 10년 전 원고를 고치고 다듬다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머물렀다고 해요.

자신이 쓴 글을 통해 잊고 있던 시칠리아 여행이 떠올랐고, 그 여행이 마치 예정된 운명의 실현처럼 느껴졌다는 것.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종종 과거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확인할 때가 있어요.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운명의 조각들이 합쳐져서 선명한 그림이 완성되고, 그것이 바로 현재의 나를 만들었구나,라고 깨닫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과거의 내가 보내온 편지'라고 표현했어요. 

저한테 가장 와닿는 문구는...


'어느새' 나는 이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30p)


나이가 들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느새... 이런 나를 발견하는 일.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고, 나는 늘 나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많은 게 바뀌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던 거예요.

여행이란,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인생 수업 같아요.

그곳이 어디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여행이 어땠는지를 결정하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시칠리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여행 정보 대신에 여행자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이 책 덕분에 시칠리아가 이탈리아 지도에서 장화 코 앞쪽으로 연결된 섬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이탈리아 본토에서 시칠리아로 들어가려면 우선 기차가 있어야 하고 그 기차를 실어나를 페리가 있어야 하고 다시 그것을 내려 육지의 선로로 연결해줄 노동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가 여행할 당시에는 바로 그 구간에서 파업이 발생해 엄청 고생을 했대요. 시칠리아로 가는 여정은 힘들었지만 맛있는 음식과 거칠고 순박한 사람들, 오래된 유적과 어지러운 거리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저자에게 시칠리아는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해요.

개정판에는 원래의 판본에서 누락되었던, 시칠리아에서 직접 요리해먹었던 현지음식 요리법이 추가되었어요. 먹는 즐거움, 인생에서 절대로 빼놓을 순 없죠.


노토 사람들은 먹는 문제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다, 라고 『론리플래닛』시칠리아편의 저자는 적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시칠리아의 최고의 음식들을 노토에서 먹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노트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삼백 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244-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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