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웨이 만들기
제임스 배런 지음, 이석호 옮김 / 프란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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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추억...

어릴 적에 부모님은 큰맘 먹고 피아노를 구입하셨는데, 음... 우리 형제들은 영 소질이 없었어요.

저는 피아노 연주보다는 피아노 윗판을 열고 작은 나무토막이 움직이는 걸 보는 게 더 좋았어요. 그냥 피아노를 배경 삼아 놀았더라는, 추억이라기엔 별 게 없네요.

그 나무토막 명칭이 해머라는 것,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멋진 악기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요. 

 

<스타인웨이 만들기>는 말 그대로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취재한 책이에요.

저자는 뉴욕 타임스 기자이며, 단 한 대의 피아노를 11개월 동안 밀착 취재했다고 해요. 그 시작은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었대요.

"스타인웨이에 가서 피아노 한 대가 제작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해보면 어떨까?"  (422p)


그러고보니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과정은 다큐 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 피아노 제작 과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피아노와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클래식 악기 중에서 그나마 친근한 피아노지만 그건 느낌적인 부분이고 실제적으로 아는 건 별로 없었더라고요.

자, 그럼 주인공을 소개할게요.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뉴욕의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Steinway & Sons 공장에서 제작된 콘서트 그랜드이며, 이름 대신 번호 K0862 로 불리고 있어요.

K0862 는 다른 모든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와 똑같은 생김새지만  세상에 오직 한 대뿐인 피아노예요. 

이 책은 K0862 의 제작과정을 마치 슈퍼스타의 일대기처럼 그려내고 있어요. 한 명의 슈퍼스타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조력자들이 존재하듯이,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가 훌륭한 악기가 되기 위해서는 공장의 숙련된 노동자들 450명의 손길을 거쳐야 해요. 이런저런 손길을 거치는 기간이 열한 달이 넘는 동안 사람들에게 K0862 혹은 '862'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든 공정이 끝나는 순간에서 여섯 자리 일련번호 No. 565700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대요. 스타인웨이가 제작한 통산 56만 5700번째 피아노라는 뜻이에요.

사실 K0842 의 탄생과정은 시간을 거슬러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공장이 세워지기 훨씬 전으로 가야 해요.

스타인웨이 가문에 구전되어 내려온 바에 따르면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가 제작한 최초의 피아노는 자투리 시간에 부엌에서 만든 것이었다고 해요. 슈타인베크 제1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요. 스타인베크의 일가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1850년 모두 제젠을 떠나 미국 뉴욕에 자리를 잡았어요. 하인리히 엥겔하르트의 차남 카를이 먼저 독일을 떠나 미국 피아노 제조사인 베이컨 앤드 레이븐의 조율사로 일했고, 하인리히 엥겔하르트와 하인리히 2세, 그리고 알브레히트도 곧 이곳에 취업했대요.

1853년에 하인리히 엥겔하르트는 아들 하인리히 2세, 카를과 함께 회사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어요. 이때 뉴욕 사람들은 긴 이탈리아식 명칭 대신 '피아노'라 줄여서 부르고 있었고, 슈타인베크 일가도 성씨를 영어식 이름인 스타인웨이로 바꾸는 편이 장사에 도움이 되리라 내다봤대요. 먼저 이름을 바꾼 건 아들들이었어요. 하인리히 2세는 헨리 주니어가 되었고, 카를은 찰스, 빌헬름은 윌리엄, 알브레히트는 앨버트가 되었어요. 결국 아버지만 빼고 온 가족이 영어식의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온 가족이 사업에 참여하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라는 회사가 뉴욕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윌리엄 스타인웨이는 회사를 키워낸 인물이에요. 

역사가 리처드 K. 리버먼의 말대로 그는 "미국의 미스터 뮤직"이었으며, "서커스에 P.T. 바넘이 있었다면 고전음악의 피아노라는 악기에는 윌리엄 스타인웨이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기획자였다고 해요. 유럽의 유명 비르투오소들은 그의 손을 거쳐 당대를 풍미한 스타가 되었어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스리 테너스 같은 슈퍼스타들을 막후에서 움직인 현대의 기획사들은 윌리엄 스타인웨이가 마련해놓은 계획과 전술을 그대로 따랐어요. 피아노 제작은 직원들이 맡아서 해냈고, 그는 명성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오롯이 집중했다고 해요. 

C.F.테오도어 스타인웨이는 미국을 너무도 싫어해서, 1884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함부르크에 공장을 차렸고, 이후로도 몇 세대에 걸쳐 뉴욕과 함부르크 두 곳에서 동일한 기준에 맞춘 동일한 모델 라인업을 유지했어요. 그러나 함부르크에서 생산된 피아노는 뉴욕 스타인웨이와 다른점이 있어요. 피아노 케이스의 일부로서 건반 양끝을 둘러싸는 '암arm'의 모양이 뉴욕 스타인웨이는 모서리가 날카로운 직각에 가깝게 마감되었고, 함부르크 스타인웨이는 암의 모서리가 둥글러져 있어요. 

뉴욕은 적응을 선택했고, 함부르크 쪽에서는 유럽의 옛날 디자인 방식을 고수했던 거예요. 

스타인웨이 가문의 역사를 알고나니 스타인웨이 피아노 자체가 그들의 역사이자 역사적 산물로 느껴졌어요.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 뉴욕에 정착하기까지, 스타인웨이가 훌륭한 피아노로 인정받기까지, 그리고 또다른 나라의 이민자들이 스타인웨이 공장에서 피아노 제작공정을 맡게 되기까지.


완성된 K0842 가 새로운 이름인 No. 565700 가 된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No. 565700 은 'CD-60'이 되었어요. '콘서트'와 '모델 D'의 머리글자를 딴 약어인데, 스타인웨이 홀의 지하층에서 연주되고 있어요. 

CD-60 처럼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는 번호를 최대 세 개까지 부여받을 수 있어요. 스타인웨이의 일련번호는 완성된 피아노에 붙는 번호라서 영구적이지만 콘서트 그랜드 번호는 그렇지 않아요. 콘서트 대여용 피아노는 보통 5~6년 정도 일선에서 복무한 뒤 은퇴한대요. 이때 콘서트 그랜드로서의 번호를 떼어버리고 여섯 자리 일련번호로 다시 불리게 되는 거예요. 몰랐어요. 콘서트 피아노로서 활동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피아노에게 은퇴라니, 뭔가 짠한 기분이 들어요.

무엇보다도 새로 제작된 피아노가 제 몫을 해내려면 피아니스트의 인정을 받아야 해요. 2년 차에 접어든 CD-60 은 제법 잘해내고 있다네요. 어느새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질 정도로, 친해진 것 같아요. 속내를 다 알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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