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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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뮤 이찬혁의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궁금했던 책.

<물 만난 물고기>를 읽으면서 바다를 떠올렸어요.

바다... 잊고 있었어요. 너무 오랫동안 가보질 못했으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바다'라고 했을 때, 저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한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거예요.

지금 바다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듯이... 바다는, 저마다의 바다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 '선이'에게 '해야'는 '바다'이자 '음악'인 동시에 '사랑'인 것 같아요. 

갑판 위에서 처음 만난 여자 '해야'는 거대한 파도 앞에 가만히 서 있있고, 난간에서 떨어질 뻔한 그녀를 선이가 끌어당겼어요. 품 속에 안긴 그녀가 얼굴을 들어 올렸을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보다 더 깊고 신비로운 눈동자를 보았어요. 그 안에 어떠한 혼란도 약함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 안에 빠졌고, 마치 마법처럼 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흐물흐물 스르륵, 그대로 미끄러져 풍덩!  시야가 흐릿해졌고 숨이 막혀왔어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그때, 무언가 선이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렸어요. 

눈을 감은 선이에게 온 바다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뱃고동 같은 울음소리의 주인은 고래였어요. 완벽한 어둠에 잠식된 고래의 입 속으로 힘차게 빨려 들어가 집어삼켜졌어요.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불 꺼진 객실이었어요. 위층 할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꿈에서 들었던 고래의 울음소리와 비슷했어요.

아, 꿈이었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데 갑자기 등의 통증을 느꼈어요. 뭐지, 갑판의 여자는 꿈이 아닌 건가.

객실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복도로 나온 선이, 누군가 그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어요. 바로 그녀, 갑판에서 보았던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해야'였어요.

선이가 두 번째로 해야를 만나는 장면, 이 순간이 정말 좋았어요. 


"해야라고 해."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럼 난 정말 바다에 빠졌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난간 밖으로 튕겨져 나가 바다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딘가로 떨어져 물 속에 잠긴 것은 사실이었다. 이상했다.

"잠깐, 난 어디 빠진 거지?"

그녀는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며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마치 "나한테?"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웃음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녀에게,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눈동자에 빠졌던 것 같다.  (80p)


<물 만난 물고기>는 뮤지션 이찬혁의 바다를 보여주고 있어요.

주인공 선이가 첫눈에 빠져들었던 해야는, 사랑보다 더 깊고 넓은 바다였어요. 내 안에 가둬둘 수 없는 바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소유할 수 없어요. 다만 항해할 뿐.

아하, 자유....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파도

비치는 내 얼굴, 일렁이는 내 얼굴

너는 바다가 되고 난 배가 되었네

             (165p)


악뮤의 앨범 타이틀 곡인 <물 만난 물고기>의 가사가 책 속에 나와 있어요. 이번에 발표된 모든 곡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볼 수 있어요. '본다'고 표현한 건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주인공 선이의 바다를 잠시 봤던 거예요. 한여름 밤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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