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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리처드 플레처 지음, 박흥식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우연히 TV를 통해 알함브라 궁전을 보았어요.
와우,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유럽 한복판에 이슬람 문화라니, 뭔가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마치 알라딘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가 튀어나와 궁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그러나 언론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이슬람 이미지는 주로 폭력이나 부정적인 사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몇 년 전, 국내에서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진 것도 불안과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 일부 언론의 탓이에요.
과거 IS 혹은 알케에다가 저지른 테러는 명백한 범죄 행위가 맞지만 그때문에 이슬람 혐오나 이슬람 공포증을 갖는다는 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예요.
도대체 왜 무슬림은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를 다룬 책이에요.
유럽 중세사가 리처드 플레처는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뒤엉킨 관계사 및 교류사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안내하고 있어요.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약 천 년에 걸쳐 그리스도인과 이슬람 사이에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관계를 통해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요.
무슬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그리스도교의『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창세기」16장에는 이스마엘의 출생과 운명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어요.
"이스마엘은 들나귀 즉 난폭한 자가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족과 대결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27p)
아랍인들을 부정한 혈통이자 야만적인 민족으로 봤기 때문에 성서에도 그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750년 이슬람은 새로운 통치자 압바스의 등장으로 이슬람 제국이 시작됐고, 언어가 아랍어로 통용되면서 압바스 제국을 통합하는 강력한 힘이 됐어요.
압바스 왕조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 접촉은 있었으나 그 관계가 깊지는 않았어요. 이후 거대한 자유 무역이 이뤄지면서, 정복자들을 따라 문화와 기술이 전파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슬람 개종 압력이 가해졌어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서로 종교적 반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상태에서 어울리며 공존했어요.
십자군 원정 시기에 그리스도교 세계와 다르 알-이슬람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극에 달했고, 두 유일신 신앙의 추종자들의 격돌은 불가피했어요. 한편 십자군은 더 큰 세계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어요.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는 애초에 대단한 이해관계가 없었는데 상황이 위태로워지면서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했어요. 십자군 원정기에 지중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치적 확장은 국가와 교회의 지배 계층 모두에게 낯선 과제를 던졌어요.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이슬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그리스도교 법률에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통치 당국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던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영역인 성적 관계를 보면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성관계는 양자 모두 사형선고를 내렸고, 그 어느쪽이든 비난과 처벌의 대상은 여성이었어요. 법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사형을 당하거나 노예 신분으로 강등되어 착취당했다고 하니, 성차별과 인권 유린이라는 끔찍한 역사네요.
십자구 원정 이후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강력하게 살아남았고, 이슬람 세계와의 문은 점점 닫혀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문화적 차이만큼 멀어지고 단절된 거예요. 14 · 15세기에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도교 세계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증거는 라쉬드 알-딘이 1300년 즈음 펴낸 몽골의 역사에 관한 백과전서 일부라고 해요. 근본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세계가 천 년을 공존해온 역사를 살펴보면서 종교에 대한 의문이 생겼어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직 끝나지 않은 두 세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인류의 과제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처럼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