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라임 - 상
김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프라임>은 김동진 작가의 소설이에요.
한 편의 정치 드라마를 본 것 같아요.
15년 전, 국회의원 서정권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떨어진 데다가 자신의 보좌관에게 지역구를 뺏기는 신세가 되었어요.
절망에 빠진 그에게 힘을 준 건 편의점 알바생 영가여.
시작은 늘 그렇듯이 우연한 만남이지만 훗날 운명이었다고 기억된 특별한 인연이에요.
정권의 딸 혜원이 아빠를 만나려고 기다리던 장소가 편의점이었고, 그 시간에 일하던 가여가 두 사람을 우연히 봤던 인연으로 정권에게 말을 건넸던 거예요.
딸을 보낸 후 다시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던 정권, 이후에 딸의 부탁을 받은 가여가 쌍화탕을 전해주자 울먹이는 정권.
그때 가여는 용기를 내어 정권에게 말을 걸었고, 여러모로 힘들었던 정권은 가여에게 속내를 털어놓았어요.
"당에서 내 보좌관을 내 지역구에 내세웠고, 난 옆에 야당 텃밭에 공천되었지. 자네가 보기에는 왜 그런 거 같나."
"저요?"
...
"제물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제물?"
"안 되면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잘 되면 당이 잘 선택한 거잖아요.
그게 제물이고, 도구죠."
...
"저야 이렇게 아르바이트하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정치란 게 도구만 팽배한 싸움이더라구요."
"도구만 팽배한 싸움이라..."
"그렇지요. 누구나 자신은 도구라고 생각지 않지만, 결국에는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서 사용이 되고, 쓸모가 다하면 버림받고.
사실 그 국회의원이라는 도구를 쓰는 유일한 주인은 국민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 도구에서 벗어나라겨 하잖아요. 다들."
정권이 늘 듣는 말이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말을 해 주는 가여를 보며 상당히 고무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번 열린 가여의 입도 쉽게 닫히지 않았다.
"의원님이 지금 이렇게 녹이 슨 도구로 전락해 버리면 도구를 사용할 사람들은 재빨리 알아볼 거예요.
그리고 의원님은 정말로 재기할 기회가 없어지겠죠."
가여는 말을 끝내고 정권의 눈치를 보았다. 정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를 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가여의 손을 덥석 잡아챘다.
"그럼 녹이 슬지 않게 갈고닦아야겠구먼... 고맙네."
무언가 생각이 정리된 생기 가득한 정권의 눈빛을 보니, 가여 또환 고무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의욕을 잃은 국회의원의 힘을 돋워 주었다는 생각에 기분은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다음에 또 보세." (25-26p)
<프라임>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일개 알바생 가여가 국회의원 정권에게 정치를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어요.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인은 뭘 하는 사람인지를 똑똑히 설명하고 있어요.
누구나 말로 떠들 수는 있지만 자신이 말하는 걸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는 건 쉽지 않아요. 또한 들어야 할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더군다나 살면서 선거 운동하는 모습 말고 정치인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소설 속 정권이라는 인물이 유니콘처럼 보였어요.
그동안 우리 주변에는 말만 하는 정치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치를 외면하거나 불신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변화가 느껴져요.
불과 한 달 전 총선을 치르면서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최종 투표율 66.2% 라는 28년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어요.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08석 의석을 확보하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초의 거대여당이 탄생했어요.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역대 정부 가운데 집권 3년차 지지율 최고치 71% 라는 거예요.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에요.
과연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기대가 커요.
<프라임>의 프롤로그가 마침 그 내용이라서 흥미로웠어요.
[속보 - 도라산 출입 사무소 통해 체육 실무자 대표단 방북]
많은 기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남북 체육 실무자 회담을 하기 위해 한국 측의 실무자들이 도라산 출입 사무소를 통해 방북하고 있었다.
관심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이번 회담에서 남북 공동 월드컵 개최가 논의된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
"야. 대한민국 언론사 90%가 광복 이후부터 분단으로 먹고 살았어 인마.
근데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 봐라. 우리가 살아남겠냐?"
"언론이 언론 노릇하면 살지 않을까요?"
"에휴... 너도 좀 굴러 봐라. 여기 생리가 그런 것이 아니다." (7-8p)
사실 남북 회담 개최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실무자들, 이 나라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기하고 놀라웠던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 이야기, 이제는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래야 진짜 프라임을 만날 수 있을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