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살인의 쌍곡선>은 니시무라 교타로의 추리소설이에요.

니시무라 교타로는 일본의 '국민' 추리소설가라고 하네요. 작가에 대한 전혀 몰랐다가 이 소설을 읽고나서 감탄했어요.

역시 '국민'이란 수식어는 그냥 붙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1930년생, 올해로 90세의 작가는 1961년에 쓴 『검은 기억』으로 데뷔하여, 2019년 7월 기준으로 총 622편을 출간했다고 해요.

1971년 출간된 <살인의 쌍곡선>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맞서는 클래식 미스터리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에요.

우와, 작품연도를 알고나서 새삼 놀랐어요.

일단 이 작품은 치밀하게 짜여진 추리게임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도입부터 특별해요. 독자 여러분께 작가가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거든요.


독자 여러분께

이 추리소설의 메인 트릭은 쌍둥이를 활용한 것입니다.

어째서 트릭을 미리 알려주느냐고요?  

추리소설에는 오래전부터 금기 같은 게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로널드 녹스가 제시한 '탐정소설 십계'를 보면

그 열 번째로 '쌍둥이를 활용한 역할 바꾸기 트릭은 사전에 독자에게 알려야 공정하다'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런 금기가 유명무실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작가로서 어디까지나 독자에게 공정하게 도전하고 싶어

소설에 들어가기 앞서 트릭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자, 이로써 출발점이 같아졌습니다.

그럼 추리의 여정을 시작해 주십시오.

    - 니시무라 교타로   (7p)


굉장히 친절하게 '쌍둥이 트릭'을 알려준다는 건 독자에 대한 배려이자 작가의 자신감인 것 같아요.

이 정도 알려줘도 모를 걸?

대부분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평범한 독자가 결정적 단서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아요. 늘 교묘하게 감춰두니까. 

<살인의 쌍곡선>도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요.

쌍둥이 고시바 형제가 저지른 연속 강도 사건과 도호쿠의 외딴 호텔 '관설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뉴스면에 등장할 법한 강력 범죄 사건이지만 모든 게 추리게임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범인이 설계해놓은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범행 동기가 단순히 돈이 아니라는 점.

철저히 계획된 복수극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작가는 범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요. 쌍둥이 트릭을 알려줬듯이 범인 역시 형사들을 농락하듯 단서를 흘리고 있어요.

왜 범인은 자신이 체포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단서를 남긴 걸까요.

그 단서가 가리키는 것. 

그건 바로 범행의도예요. 범인은 자신이 왜 그 일을 했는지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거예요.

70년대 일본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던 시기였어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였지만 한편으로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죠.


문득 '이수현'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어요.

 2001년 1월 26일 저녁 7시 15분, 도쿄 JR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조하려다 숨진 사람이 있었어요. 

당시 일본사람들은 또 전철역 사고가 났나보다며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사망자의 신원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에 커다란 감동과 충격이 퍼졌어요.

술에 취한 30대 남자가 비틀거리며 선로에 떨어지자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26세)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고, 옆에 있던 세키네 시로 씨(47세)도 함께 뛰어내려 도왔어요. 하지만 신오쿠보역에 들어오던 전동차를 피하지 못했고 세 사람은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역사 안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철로에 뛰어든 사람이 대한민국 청년 이수현 씨였어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일본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어요.

실제로 '이수현 신드롬'이라 불리면서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고, 이전과 다르게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해요.


근래 방송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님이 들려준 일본인 이야기가 <살인의 쌍곡선>과도 연관되는 것 같아요. 

일본 교육의 중심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반면에 일본속담 "타비노 하지와 가키스테" (たびの はじは かきすて = 여행의 수치는 버려라 )는 여행 중엔 부끄러운 일을 하더라도 그곳에 버리고 오면 부끄러워할 게 없다는 뜻이라면서, 이 속담이 일본의 역사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니시무라 교타로는 훌륭한 추리소설 작가일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꿰뚫어보는 지성인이라는 점에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소설이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여전히 죄의식 없는 범죄자들이 들끓는 현실에서, 정의 구현은 미션 임파서블인 건지 물음표가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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