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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원제는 Vox .
라틴어로 '목소리'를 뜻한다고 해요.
2018년 출간된 이 작품은, 먼 미래가 아닌 현재를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상황들은 불과 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절대. 여자들이 참지 않을걸."
"지금이야 쉽게 말하겠지."
재키가 말했다. (157p)
주인공 진 매클렐런 박사는 뛰어난 신경언어학자였어요. 과거형, '-였다'라고 표현한 건 현재는 집에서 충실한 아내이자 엄마 노릇만 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만해도 다들 희망을 이야기했어요. 그 뒤 희망의 상징 같았던 대통령이 새로운 남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당당히 투표를 통해 당선된 새 대통령의 이름은 샘 마이어스.
칼 코빈 목사는 성도덕에 관한 몇 가지 안건으로 현재의 권력자 자리에 올랐어요. 샘 마이어스는 비공식적인 오른팔인 칼 목사의 말만 들었어요. 칼 목사의 순수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세상은 100년 전으로 회귀했어요. 페미니즘과 기독교적 가치의 해체.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자만큼의 능력이 없으므로 사회 활동 일체가 금지되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또한 모든 여성들의 왼쪽 손목에 '카운터'라는 팔찌를 채웠어요. 여자는 하루에 오직 100단어만 말할 수 있고, '카운터'는 일종의 감시용 전자팔찌예요. 100단어를 넘기면 약한 수준에서 점차 강하게 전기 충격이 가해져요.
진에게는 남편 패트릭, 열다섯 살 아들 스티븐과 열한 살 쌍둥이 형제 샘과 레오, 그리고 여섯 살 딸 소니아가 있어요. 남편과 아들들은 단어 카운터를 차지 않지만 여자인 진과 소니아는 차야 해요. 아직 어린 소니아, 여섯 살이면 한창 언어가 확장되는 시기인데 엄마인 진은 인지 언어학자인데 딸이 전기 충격을 받지 않도록 말하지 않는 연습을 시키고 있어요. 소니아에게 과자와 마시멜로를 뇌물 삼아 말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연습을 했어요. 진은 그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자꾸만 되뇌었어요. 마이어스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아예 투표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세상사에 무관심한 존재였는지, 절친 재키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진, 너 투표해야 해." (156p)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진은 대학 시절에 패트릭을 만났고, 패트릭이 의대 시험 준비를 할 때 자신도 전공에 파묻혀 살았어요.
재키 후아레즈는 지금 수용소에 갇혀 있어요. 칼 목사는 성 소수자와 문제가 있는 여자들을 수용소에 보냈어요. 새로운 정책이 정착될 때까지 수용소에 머물게 한다는 건데 실제로는 감옥이었어요. 시골 한 가운데에 있는 수용소에서 그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해요. 그들이 차고 있는 금속 팔찌에는 숫자가 표시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 마디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어느날 칼 목사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대통령의 형이 스키 사고를 당했고, 손상된 뇌 병변이 바로 진이 연구했던 베르니케 영역이었어요.
측두엽과 두정엽이 만나는 뇌 영역, 좌뇌 후부가 손상되면 실어증이 생기게 돼요.
칼 목사는 진에게 팀에 합류하여 연구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말만 제안한 것이지 일방적인 명령이었어요.
연구소에 간 진은 함께 연구를 했던 동료 린 박사와 로렌조를 만나게 됐고, 드디어 멈췄던 실어증 프로젝트를 재개했어요.
읽는 내내 주인공 진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무엇보다도 소름 돋는 부분은 남편 패트릭과 아들 스티븐의 변화인 것 같아요. 진은 지옥 같은 현실을 겪으면서 재키가 그토록 강조했던 이야기들을 깨닫게 됐어요.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이 승리한다." (489p)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요. 목소리를 낸다는 것, 새삼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뭉클했던 장면이 있어요.
"사랑해요, 엄마. 정말 사랑해요."
소니아가 건네는 네 마디 말만으로도 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228p)
우리에겐 100단어 이상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