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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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늪과 같아요.

너무 깊숙하게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까.

<우린 괜찮아>는 니나 라쿠르의 소설이에요.

주인공 마린은 뉴욕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혼자 남아 있어요. 

원칙대로라면 방학 한 달 동안 기숙사는 문을 닫아야 되지만 상담사가 마린이 머물 수 있도록 조처해줬어요.

룸메이트 한나는 떠나기 전, 마린에게 정말 괜찮겠냐고 물었어요.

마린은, "난 괜찮다니까."라고 말했어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답변일 거예요.

지금 마린에게 필요한 건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보다 믿을 수 있는 미소.

그러나 현실은, 텅 빈 기숙사에 혼자 난방기를 켜고 추위와 외로움에 떨고 있어요.


"... 눈이 따갑고 목이 멘다. 

이 외로움을 무디게 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외롭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단어였으면.

외롭다는 말은 훨씬 덜 아름답게 들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외로움을 감당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중에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불시에 덮치지 않도록, 

온몸이 마비되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숨을 들이쉰다. 숨을 내쉰다. 이 새로운 나무들에 눈을 열어둔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여기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내일이면 메이블이 온다는 걸 안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도 나는 항상 혼자일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공허감을 들인다.

...혼자인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내가 마지막으로 혼자였을 땐 이런 식이 아니었다."   (16-17p)


지금 이곳으로 메이블이 오고 있어요. 다시 마린의 삶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메이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린은 세 살 때 엄마를 잃고, 그 뒤로 쭉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어요. 메이블은 마린에게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시절, 벤의 집에 놀러갔던 마린은 메이블과 함께 택시를 탔어요. 택시기사는 룸미러로 메이블을 쳐다보더니 스페인어로 말을 건넸어요.

택시기사는 콜롬비아 사람이었고, 마린은 "《백년 동안의 고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라고 말했어요.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책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닐 텐데.

다행히 그는 "가르시아 마르케즈를 좋아하니?"라고 답해줬어요.

그러면서 그 책을 가장 좋아한다니 믿기 힘들다고도 했어요. 그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러기엔 넌 너무 어리다고.

집 앞에 이르러 차를 세운 후, 그가 몸을 돌려 마린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요. 

"난해한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야. 섹스를 두고 하는 말도 아니고.

그 책엔 너무 많은 좌절이 담겨있잖아. 희망이 별로 없어. 모든 게 절망이지. 모든 게 고통이고.

내가 하려는 말은, 슬픔을 쫓는 사람이 되지 말란 거야. 

슬픔이라면 이미 우리 삶에 충분하니까." 

... 

"그 사람 말이 맞아?

넌 슬픔을 쫓는 사람이야? 아니면 그냥 그 책이 좋은 거야?" 메이블이 내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나도." 메이블이 말했다. "하지만 재밌는 말이긴 하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픔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책에서 슬픔을 찾았다. 현실보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 

진실은 틀에 갇히지 않았고 꾸밈이 없었다. 

진실에는 시적인 표현도 없고, 노란 나비들도 없고, 엄청난 홍수도 없었다. (111p)

 

처음에는 마린에게 어떤 일이 생긴 건지 궁금했어요. 제3자의 시선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점점 마린의 생각과 마음을 읽게 됐어요. 

"나도 모르겠어."라고 느끼는 수많은 순간들을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마린을 통해서 그 순간들을 되돌려 보게 됐어요.

삶의 비극, 불행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와요. 마린은 책 속으로 자신을 숨겼던 것 같아요. 아직 어리고 순진했으니까.

그러다가 그 일이 벌어졌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서 도망쳤던 거예요. 아직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때론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로 스스로 위로하지만 슬픔이 밀려와 나조차 사라진 듯 느껴진다면... 그때 필요한 건.

<우린 괜찮아>는 제목처럼 "우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소설이에요.

마린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아서, 그 슬픔의 늪에서 꺼내줘서 고마웠어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택시기사의 당부처럼, 부디 슬픔을 쫓는 사람이 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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