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바레스 :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
벤 바레스 지음, 조은영 옮김, 정원석 감수 / 해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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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바레스는 2017년 12월 27일 세상을 떠났어요.

만 61세의 나이에 췌장암 판정을 받은 이후 21개월 동안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타고난 열정가답게 마지막 순간까지 훌륭한 과학자인 동시에 교육자의 역할을 멋지게 해냈어요.

그런 의미에서 <벤 바레스> 아주 특별한 자서전이에요.

이 책은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맞선 어느 과학자의 인내와 열정이 담겨 있어요.

크게 세 부분으로, 개인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와 과학자로서 연구한 내용들, 마지막으로 과학계 멘토로서의 입장을 들려주고 있어요.

과학자는 과학적 진실을 밝혀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진실을 가로막는 편견을 끊임없이 깨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느 시대든 편견에 맞서 싸운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어요.

여성 과학자로 그리고 트랜스젠더 과학자로 살아온 그의 삶을 통해 장벽을 인식하고 낮추는 노력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어요.

미처 몰랐던 장벽이 무엇인지, 얼마나 높은지 알아야, 자책을 멈추고 그걸 허물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요.

그는 바버라에서 벤으로, 같은 사람인데도 여성일 때와 남성일 때 다르게 대우받는 경험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부당함을 알게 된 거예요.

젊은 연구자에게 주는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고도 국립보건원에서 주는 개인연구과제 연구비를 받지 못했던 것이나, 최고 저널에 논문이 실렸는데도 인정받지 못했던 것 등등.

여성 과학자의 연구 업적은 같은 연구를 한 남성에 비해 그 가치를 덜 인정받고 있어요.

여기에서는 여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아직도 우수하고 영리한 젊은 과학자들이 성차별, 인종차별 같은 편견으로 인해 과학적 열정을 포기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원 명단만 봐도 아시아인들은 자격과 상관없이 극히 소수만 선출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일부 교수들 중에는 박사 과정 학생과 박사 후 연구원들을 혹사시켜 자신의 이력을 채우는 데 급급한 경우들이 있어요. 벤은 이런 행동을 가차 없이 비판했어요.

벤에게 과학과 연구란 함께 나눠야 할 특권이자 기쁨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실 멤버들을 가족처럼 여겼다고 해요. 

신경과학 분야에서 벤의 연구팀이 밝혀낸 사실들이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어요. 주목할 점은 각 연구 내용마다 연구원들의 성과를 일일이 언급했다는 점이에요.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마치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을 자랑하는 느낌이랄까.

인간의 뇌세포는 신경세포(뉴런) 외에도 신경아교세포라는 세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신경아교세포보다는 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뉴런에 더 집중해 왔어요. 한 마디로 신경아교세포는 관심 밖,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어요. 그러나 벤은 신경아교세포가 뇌의 기능에 중요한 일부를 담당한다고 확신하고 이를 연구했던 거예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주요 신경퇴행성 질환에 지배적인 활성 별아교세포가 A1이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왠지 벤 바레스가 자신이 연구했던 신경아교세포와 닮은 듯... 

2006년, 벤은 유명한 과학 저널 『네이처 Nature』에 「성별이 문제가 되는가? Does gender matter?」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을뿐 아니라 학회, 기관, 총장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하라고 촉구했어요. 2015년 벤은 학회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에 대해 특히 분개했고, 예방 규정을 마련하도록 강력히 요청했어요. 그리고 미 국립보건원이 성희롱 근절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벤 바레스는 이 책을 통해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어요.


"편견과 차별에 관한 한 우리 모두 '괴물'이다.

학계가 다양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환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선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작 단계라는 점은 알고 있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장벽은 놀라울 정도다.

... 우리 모두는 ... 이 장벽을 인식하고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230-231p)


추가적으로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생물학과 교수이자 신경아교세포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였던 벤의 남다른 사연을 소개하려고 해요.

그 이유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우리가 여전히 무지하기 때문이에요. 보편적인 무지와 혐오의 시대에 트랜스젠더로 성장하는 것이 힘겹고 고통스러웠다는 벤 바레스의 고백처럼 그의 사연을 널리 알리는 것이 장벽을 낮추는 노력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바버라는 네다섯 살 무렵부터 자신이 잘못된 성별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여자아이였지만 속으론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대요. 더구나 자신에겐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극명하게 느꼈대요.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뮐러관 무발생 증후군으로 자궁과 질이 없이 태어났다는 걸 알았고,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남성화 호르몬에 노출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대요. 성장기와 청년기에 성별 혼란으로 인해 느낀 지속적인 괴로움, 낮은 자존감, 강한 자살 충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대요. 그뒤 마흔이 되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대요. 그리고 1997년 12월 말에 동료, 가족, 친구들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성별 불쾌감에 관해 설명하고 성전환을 하겠다는 사실을 알렸대요.

다행히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받았고, 비로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었어요.


"...성별 불쾌감이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성별 불쾌감을 성 정체성 장애라고 했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릅니다.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해부학적 성별과 뇌가 느끼는 성별(성 정체성)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를 느낍니다. 

... 많은 고심 끝에 저는 테스토스테론을 맞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마침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명예, 일, 친구, 그리고 가족까지 말입니다. 

... 그러나 테스토스테론 치료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저 자신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고 나를 가장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줄 거라 믿습니다.

제가 옳은 결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성별을 바꾼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벌써부터 마음 깊이 안도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성전환을 한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성별을 바꾼' 이후에 직장을 옮깁니다.

그러나 저에게 익명성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바도 아니에요.

저는 제가 누구인지 감추는 것에 지쳤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채 견디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사람들의 눈에 드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 저는 진심으로 저 자신이 좋은 과학자이자 좋은 선생이라고 느낍니다. 

비록 성별이 달라지더라도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제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123-126p)


제일 먼저 척 스티븐스이 보낸 답신은 정말이지 감동이었어요. 이 세상이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을 간직한 사람들 덕분이에요.

과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의 다양성을 발견하고 존중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친애하는 바버라에게,

개인적인 상황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내면이지 성별이 아닙니다.

당신의 다른 친구들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벤"으로 불러야 할 때 알려주세요.

    - 행운을 빌며, 척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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