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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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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Dame Daphne du Maurier 

​(1907년 5월 13일 ~ 1989년 4월 15일)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다음의 작품은 알 거예요.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자메이카 여인숙>, <새>와 니컬러스 뢰그의 영화 <지금 쳐다보지 마>의 원작자.

사실 요즘은 영화보다 뮤지컬 <레베카>가 더 유명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집이에요.

첫 번째 단편인 <동풍>은 1926년, 작가가 19살에 쓴 작품이라고 해요. 아무런 편견 없이 작품을 봐도 놀라운데, 그걸 쓴 작가의 나이를 알고나니 무서울 지경이에요.

어떻게 십대의 머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 점이 가장 미스터리하네요.

여기에 실린 단편소설 13편의 차례는 발표순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의 작품 탄생 순서를 따랐다고 해요.

작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독자라면 작품 그 자체를 즐기면 되겠지만,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된 작가를 뒤늦게 만난 독자라면...

저는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삶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유명 만화가이자 작가였던 할아버지. 유명 연극배우였던 부모.

조부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둘째 딸에게 유독 기대와 애정을 쏟아부은 아버지 제럴드.

어린 시절부터 딸들에게 얼음여왕 같았던 아름다운 어머니 뮤리엘.

아들을 몹시 바랐으나 딸만 셋을 둔 아버지의 심리적 결핍을 공감한 때문인지

스스로 남자 옷을 입고 자신의 내면은 남자라 여겼던

작가의 유년 시절과 사춘기의 정신적 방황.

심지어 어머니는 남편과 대프니 사이를 시기하고 의심하는데,

끊임없는 여성 편력과 알코올 의존증을 보였던 제럴드는 

실제로 대프니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 옮긴이의 말 (325-326p)


일단 대프니의 단편소설을 읽고나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삶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대부분 25세 이전에 쓴 작품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광기어린 사랑, 탐욕과 위선, 성착취와 성차별, 배신과 불륜, 이중인격, 절망과 증오...

특히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예리하게 끄집어낸 묘사들이 소름돋았어요.

그건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물로 시작해서 끔찍한 공포물로 끝나는 반전 영화 같아요.

단순히 상상만으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리얼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1930년대 발표되었고, 7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전혀 녹슬지 않았어요.

영국 작가 대프니는 1977년,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상을 받았다고 해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전기 작가인 마거릿 포스터가 "인기 작가로서 듀 모리에처럼 장르 분류의 틀을 그토록 거부한 이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자신의 소설이 공포물 혹은 미스터리물로 규정되는 게 싫었을 것 같아요. 그녀가 들려주고 싶었던 건 가상의 공포가 아니라 감춰진 인간 본성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작가 자신의 삶이었을 수도... 굳이 장르를 규정해야 한다면 블랙코미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혹할 때, 소설은 진짜 소설이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의 훼방꾼>의 주인공 딜리는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착한 마음씨 탓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건만 도리어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다는 결론.

그토록 친절하게, 진심을 다해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했는데, 어째서 왜 자신은 불운하고 불행하냐고 부르짖고 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319p)

딜리가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맷지 고모, 케네스, 에드워드, 버넌 마일스, 치체스터 경에게 했는지, 제삼자의 눈으로 확인해보세요.

과연 딜리 인생의 훼방꾼은 누구일까요.

각 단편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주인공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비극의 주인공, 그들의 인생은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요.

문득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찔했어요. 


"괜찮아,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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