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모일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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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평범한 날들이 진심으로 고마워요. 

안타깝게도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쯤 평범한 날들이 돌아올지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모월모일>은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이에요. 

시인은 이 산문집을, 평범한 날을 기리며 썼다고 해요.


"삶이 일 퍼센트의 찬란과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했다.

작은 신비가 숨어 있는 아무 날이 내 것이란 것을,

모과가 알려주었다.

내 평생은 모월모일의 모과란 것을.

평범함은 특별하다. 

우리가 그 속에서 숨은 모과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평범이 특별함이다.

매일 뜨는 달이 밤의 특별함이듯."   (8p)


책과 함께 '모월모일'이라고 적힌 3g의 티백을 받았어요.

끓는 물을 살짝 식혀 티백을 넣었더니 금세 향긋하고 달달한 내음이 났어요.

꽃밭 한가운데 와 있는 듯 은은한 향에 취했어요.

도대체 뭐가 들어갔나 했더니, 

이 티백 향의 정체는

백차, 크랜배리, 장미꽃, 엘더베리향, 레드푸르츠향, 복숭아향, 딸기향, 홍차, 베르가못향, 비트, 수레국화였어요.

바짝 말린 잎사귀로는 도저히 그 정체를 구분할 수 없지만

따뜻한 물로 우려내면 서서히 향을 내뿜으면서 "나야! 내 향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사실 '모월 모일 모과'라고 이 책을 쓰는 내내 모과 생각을 했다는 시인의 말 때문에 모과차일 거라고 짐작했어요.

아니었구나... 실망한 건 아니에요. 

어쩌면 독자들을 위해서 일 퍼센트의 특별한 향차를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니까요.

시인의 산문집은 정말 신기해요. 분명 산문인데 시를 읽는 기분이 들어요.


"여름밤은 익어가기 좋고, 겨울밤은 깊어지기 좋다.

봄밤은 취하기 좋고 가을밤은 오롯해지기 좋다.

...

밤이 하도 깊어, 밤 이외의 것은 필요 없는 순간이다."  (12-13p)


사람마다 책을 읽는 시간이나 습관이 다르겠지만 저한테 밤은 책을 읽기 딱 좋은 시간이에요.

시끌벅적한 낮 시간에 틈틈이 읽는 것도 좋지만 자꾸만 주변 소음에 정신이 팔려서 집중하기 어려워요.

특히 시집은, 꼭 밤에 읽어야 제맛인 것 같아요.

그런데 <모월모일>은 밤에 읽고 싶어서, 밤에 읽었어요. 깜박 잊고 '모월모일' 차(茶)는 나중에 마셨는데, 시간을 되돌려 그때 마셨더라면.

차는 이미 마셨고, 티백은 건져냈는데도 향이 가시질 않아서 책상 위에 며칠째 놔뒀어요.

왠지 향긋함이 그리워서, <모월모일>을 다시 꺼내 읽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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