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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오츠이치의 <일곱 번째 방>은 2007년 출간된 《ZOO》의 개정판이라고 해요.
<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가 새롭게 추가되어 모두 열한 편의 작품이 실려 있어요.
일본 소설계에서는 오츠이치를 "장르를 나눌 수 없는 작가"라고 부르며, 그의 소설 세계를 오츠이치 월드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해요.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오츠이치 월드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확실한 건 강렬한 향기처럼 기묘한 느낌을 남긴다는 거예요.
갑자기 눈앞에 쿵! 뭔가 떨어졌을 때의 충격처럼, 잠시 넋이 나간다고 해야 하나.
독특한 설정 혹은 상황이 만들어낸 감정들 때문에 등장인물에게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곱 번째 방>에서는 열 살 소년과 그의 누나가 납치된 이야기예요.
소년이 기억하는 건 가로수 길을 누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는 것뿐이에요. 엄마가 장을 다 볼 때까지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누나와 굳이 자신을 돌볼 필요 없다고 여기는 소년 사이가 유쾌할 리 없겠죠. 여느 남매처럼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며 걷고 있었는데, 누군가 머리를 내리쳤고 깨어보니 이상한 방에 갇히게 된 거예요.
도대체 누가 왜 어린 남매를 가둔 걸까요, 과연 둘은 그 방을 나갈 수 있을까요.
단순히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노리개가 된 거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묘한 기시감을 느꼈어요. 죽음, 그 자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문득 떠올랐어요.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면 체감하지 못했을 죽음의 공포를, 일곱 개의 방에 갇힌 사람들은 직면하고 있어요.
마지막 순간의 선택은... 나였다면.
<SO-far>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소년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겪었던 불가사의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예요.
먼저 제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 SO(significant other) : ① [사회] 중요한 타인 (부모, 동료 등) ② [미약식] 배우자, 연인 (약:SO)
⊙ far : [거리] 먼 곳으로(에) , (멀리) 떨어져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면 소년의 경험이 낯설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이 작품에서 유령은 곁에 있어도 존재감 제로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하는 법.
<ZOO>에서 주목할 건 주인공의 심리 상태인 것 같아요. 범인은 바로 너!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묘사가 소름끼쳤어요.
<양지 暘地 의 시 詩>는 SF 소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려내고 있어요.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감사와 원망을 동시에 품고 사는 것, 그 모순된 감정이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이름 없는 그녀에게 공감했어요.
<신의 말>은 유일무이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예요. 마치 초능력이 핵폭탄 같이 보였어요. 언제든지 모든 걸 파괴해버릴 것 같은 살상 무기.
만약 이런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어요.
<카자리와 요코>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쌍둥이 자매 요코와 카자리의 이야기예요.
똑같은 외모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 중 언니 요코는 엄마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고 있어요. 반면 카자리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왜? 그 이유는 알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엄마의 학대로 인해 요코는 정말 남들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을 당한다는 거예요. 늘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떨군 음울한 아이.
엄마는 요코를 함부로 때릴 뿐 아니라 의식주 모든 걸 제대로 해주질 않아요. 교복도 요코 것만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요. 카자리는 공주, 요코는 거지인 거죠. 카자리는 엄마가 자신만 아낀다는 걸 알고 요코를 무시하고 괴롭혀요. 결말을 보고 소름돋았어요.
<Closet>과 <혈액을 찾아라>는 탐욕스런 인간 민낯이 드러나는 미스터리물이에요. 반전의 결말은 보너스.
<차가운 숲의 하얀 집>과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를 굳이 묶어서 설명하자면, '괴물을 만드는 건 인간 자신'이라는 거예요. 끔찍한 범죄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 내면에 숨겨진 비극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는 짧지만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야기예요.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하면 돌아보고 싶은 인간 심리, 왠지 기억나지 않는 공포까지 끌어올리는 상상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오츠이치의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