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이어령(李御寧)님은 올해 한국 나이로 77세를 맞는다고 해요.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은 분이죠.

이 책은 오직 작가님의 이름만 보고 읽게 됐어요.

역시나 대단한 필력으로 우리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한국인 이야기 : 너 어디에서 왔니>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 열두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옛날 옛적 갓날 갓적에 꼬부랑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하면 상상이 되시나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의 정서를 꼬부랑이라는 단어로 함축하고 있어요.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넘어 열두 고개마다 재미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첫째 꼬부랑길은 태명 고개예요. 임신하면 뱃속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것이 한국인만의 특징인 줄 몰랐어요.

서양 문화권에는 원래 태명이 없다고 하네요. 일본이나 중국도 태명을 사용했다는 풍습을 찾지 못했다고 해요. 태명에 관한 연구 논문를 살펴보니, 태명을 한국말 그대로 'Tae-myng'이라고 표기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인터넷 답사를 통해서 태명이 한류 문화로 널리 알려졌다고 하네요.

태명은 우리 생명의 기점이 이 세상에 태어난 뒤부터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 태내에 있을 때부터라는 걸 체득하게 해줘요. 

둘째 꼬부랑길은 배내 고개예요. 우리는 태몽과 태교를 통해 애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한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어요.

태 안에서 힘차게 발길질하는 배내 아이의 태동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발의 반란을 본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한국인의 특성이 발에 있다는 것은 억측이 아니라고 해요. 화려한 발차기 기술의 태권도를 한자로 써보면 발과 관계된 '밟을 태跆' 예요. 반면 일본의 가라테 空手 와 중국의 권법 拳法 에는 모두 '손 수手'가 들어가요. 손은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으나 발은 걷고 움직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어요.

서구에서 태교나 태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20세기 후반 유전학의 발달과 함께였다면, 한국은 정조 때 이미 본격 태교 전문서 《태교신기》가 있었으니 거의 200년을 앞서 갔어요. 

셋째 꼬부랑길은 출산 고개예요. 출산 후 미역국을 먹는 전통은 과학적으로도 그 효용이 증명되었어요. 산모가 미역을 먹는 것은 단순한 산후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차별화된 출생관이자 자연관을 지녔다고 볼 수 있어요. 양수가 터지는 탄생의 순간, 모태 속 행복의 바다, 한국인의 마음과 이야기의 바탕에는 바다와 채집 문화의 귀중한 자연이 남아 있는 흔적인 거죠. 뜨거운 미역국을 먹으며 뜨거운 바다, 생명의 바다를 자궁 속에 채운다는 의미랄까.

넷째 꼬부랑길은 삼신 고개예요. 옛날 이야기에 동해 용왕의 딸과 명진국 공주가 등장해요. 누가 삼신할미가 되느냐를 놓고 겨루었는데 명진국 공주가 이겨서 세상에 아기 낳는 일을 맡게 되었고, 용왕 딸은 저승 할머니가 되어 죽은 아이들을 볼보게 되었대요. 삼신 할미가 아기 볼기를 때려 엄마 몸 밖으로 내보냈는데 이때 생긴 퍼런 자국이 몽고반점이라 불렀다고 하죠. 몽고반점은 잘못 붙인 이름이에요. 영어권에서는 출생 마크라는 말이 있으니 굳이 몽고라는 말에 구애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자랑스러운 대접을 받는다고 하네요. 서양 사람들에게는 신체 부위에서 가장 혐오하는 엉덩이라는 점에서 몽고반점은 멸시의 대상이라고 하네요. 

다섯째 꼬부랑길은 기저귀 고개예요.

요즘 사람들 중에 기저귀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기저귀만 알았지, 천으로 된 기저귀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전통적인 기저귀에는 아기의 똥오줌만이 아니라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 유전자가 묻어 있어요. 이른바 '기저귀학'으로 보는 문화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여섯째 꼬부랑길은 어부바 고개예요. 한국인만의 포대기 문화 속에 담긴 문화 유전자는 참으로 훌륭한 것 같아요. 어부바 문화는 상생이자 사랑이라는 것.

일곱째 꼬부랑길은 옹알이 고개예요. 옹알이 말은 유아어로서 의미 이전에 소리만으로 어느 대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일종의 태생적 배꼽말이라고 해요. 언어학자들은 이 의성어가 가장 발달한 말로 한국어를 꼽고 있어요. 한국의 옹알이말이 천 년 전 고려가요와 공당과 아리랑에서 오늘날까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신기해요.

여덟째 꼬부랑길은 돌잡이 고개, 아홉째 꼬부랑길은 세 살 고개, 열번째 꼬부랑길은 나들이 고개, 열한번째는 호미 고개, 열두번째는 이야기 고개예요.

<한국인 이야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 자신의 탄생 비밀을 하나씩 하나씩, 곶감 빼듯이 맛나게 보여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어령님의 '한국인 이야기'가 집필한 지 10년 만에 투병 생활의 우여곡절 끝에 그 첫 권인 "탄생" 편《너 어디에서 왔니》가 탄생되었다고 해요.

혹독한 산고 끝에 탄생한 "탄생"이라는 점에서 존경과 감사를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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