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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JTBC '톡투유'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됐어요.
울고 웃는 다양한 사연마다 그에 알맞은 시를 소개하고 특유의 따스한 목소리로 낭독해주던 분.
바로 정재찬 교수님이에요.
덕분에 시(詩)가 주는 감동과 위로를 느꼈고, 새삼 시를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정재찬 교수님의 시 강의가 담긴 책이에요.
일곱 가지 테마 별로 두 코스씩, 모두 열네 가지 인생 여정에 관한 강의.
밥벌이 . 돌봄 . 건강 . 배움 . 사랑 . 관계 . 소유
혹시나 강의라고 해서 딱딱한 수업을 연상할까봐, 미리 말할게요. '톡투유'의 책 버전 같았어요.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일렁거렸어요. 뭉클하고, 아리고, 짠해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김훈 작가의 수필 일부를 읽으며 깊은 한숨이 나왔어요.
"...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 김훈, <밥1>,《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2015) 중에서 (16-17p)
다소 묵직해지는 밥벌이 한탄이지만, 그 진저리나는 밥이 몹시도 맛난 순간들이 있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황지우 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라는 시를 읽으면서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를 덤덤히 받아들였어요.
"...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 (155p)
책에 나온 일화 중 매우 인상적인 SNS 영상을 소개하고 있어요.
지하철 역 입구 부근에서 웬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대요.
경찰관과 막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그때 듬직해 뵈는 청년이 나타나서는...
혹시나 통쾌한 엎어치기 한판을 벌이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 청년이 취객을 그저 가만히 포옹해주더래요.
그러자 취객은 그의 품 안에서 얌전한 어린아이 같이 있더래요.
저는 이 영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뜻밖의 감동을 받았어요. 요즘 세상에 저런 청년이 다 있다니...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 주변에서 소동이 일어나도 모른 척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청년은 어떻게 안아줄 생각을 했는지.
품에 안긴 취객은 울고 있었을까요. 그 순간 취객의 아픔이, 그 아픔을 끌어안아준 청년의 위로가 보였어요.
정재찬 교수님은 이 영상을 보고 SNS에 다음의 시를 올렸다고 해요.
안아주기
나호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미움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 《타인의 슬픔》(연인M&B, 2008) (252p)
제가 그동안 잊고 있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어쩌면 타인과 거리를 두고 벽을 쌓고 살았던 게 아닌가. 손을 내밀고, 안아주는 일에 인색하지는 않았나...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게 아닌데,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이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결국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최고의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알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나서 노래 한 곡이 떠올라 흥얼거렸어요.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