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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그
파드레이그 케니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2월
평점 :
"엄마는 입스위치(*영국 동부, 서퍽 주의 도시)에 있대."
책 상자를 풀던 페니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빠가 자기를 향해서 전화기를 흔들고 있었다. (13p)
페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 데이비드는 지금, 런던에서 알브리지(*영국 웨스트 미들랜드에 있는 도시)로 이사를 왔어요.
새집은, 아니 이사 온 집은 완전히 낡아빠진 집이에요. 거의 수십 년간 사라이 살지 않았으니...
원래는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이었는데 두 분이 엄마한테 물려주셨대요. 당시에도 허물어질 것 같은 집이었는데, 엄마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페니는 엉성한 데다 사방이 각진 이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빠는 자신의 건축 기술을 적용해서 집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지만 페니와 데이비드는 아빠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런던에 남는 편이 더 쉬웠을텐데. 그런데 지금 이 집을 보니 어쩐지 페니는 아빠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어요.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릴테니까, 어쩌면 그 편이 아빠한테, 모두한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포그>의 첫 장면이에요.
앗, 진짜 첫 장면이 아니라 사람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라는 거예요. 포그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포그 으뜸부족이에요.
포그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키 큰 부족민이에요. 반대로 사람이 포그를 발견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작은 갈색 털북숭이 포그는 기껏해야 키가 6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하거든요. 혹시나 무슨 생쥐로 착각했다간 큰 코 다칠 걸요.
포그는 키 큰 부족과 다르게 생겼을 뿐이지 대대로 결계를 지켜내는 포그 수호자 부족이에요. 으뜸부족이라 똑똑하고 용감하면서도 겸손하죠.
아주 오래 전부터 포그 럼프킨은 괴물들이 사는 세계와 연결된 통로를 결계로 막아놓고, 괴물들이 나오지 못하게 지키는 임무를 해 왔어요.
얼마나 결계를 잘 쳤는지,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그 위에 집을 지었던 거예요.
바로 그 집에 페니 가족이 이사를 왔어요.
30년 전 포그 럼프킨은 숲 속에서 길 잃은 한 여자아이를 만났고,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여자아이는 포그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 또 만날 거야?"라고 물었죠.
"넌 혼자야?"라는 질문에 포그는 흠칫했어요. 목구멍이 찌릿 아팠지만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지금 혼자 아니다." (9p)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어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포그는 몰랐어요.
보름도 되기 전에 여자아이는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그 집을 떠났거든요.
포그는 다락에서 지내며 오랜 세월 지켜온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밤중에 숲속을 순찰했어요.
영원 같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혼자 보냈지만 포그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기다렸으니까.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을 만났어요.
페니의 아빠가 전화기를 흔들면서 엄마는 입스위치에 있다고 했을 때, 잠시 오해를 했어요. 이혼을 했나보다...
그러나 곧 알게 됐어요. 배달원이 도착해서, 자신들의 실수로 물품이 잘못 배송되어 창고로 갈 뻔 했다며 장황한 설명을 했어요.
페니는 두 팔을 쭉 뻗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네, 네, 잘 알겠고요, 근데 이젠 우리 엄마 좀 저한테 주실래요?" (20p)
배달원은 깜짝 놀랐다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씩 웃었지만 페니의 눈빛을 보더니 얼굴이 이내 구겨졌어요. 남자가 반걸음 뒤로 물러났어요. 아마 페니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저도 살짝 의심했어요. 엄마가 몸이 작아져서 저 속에 숨어 있나? 무슨 마법이 숨겨져 있나?
"네?"
"제발 우리 엄마 좀 달라고요." 페니의 말투에서 노여움이 묻어났어요. 이쯤 되면 페니가 화내는 이유가 분명 있는 건데, 뭘까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고, 얼른 페니에게 상자를 건넸어요. 외딴 숲 속에 있는 낡은 집에서 어떤 소녀가 정색을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당연히 공포감을 느끼겠죠? 이럴 때는 신속하게 퇴장하는 게 상책인데... 웬걸, 페니는 서류에 서명하기가 무섭게 남자가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할 틈도 없이 문을 쾅 닫아버렸어요.
페니가 상자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엄마 왔어요." 라고 말했어요. 정말이지, 이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어요.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 상자 안에는 청동 유골단지가 들어 있었어요. 엄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저 유골단지 안에 담겨 있었던 거예요.
와우, 처음부터 너무 셌네요.
신비로운 숲의 수호자 포그 럼프킨의 등장과 30년 뒤에 나타난 그들(페니, 데이비드, 아빠).
30년 전에 포그가 만났던 그 여자아이는 바로 페니의 엄마였어요. 그리고 이제 페니와 데이비드는 다락방에 숨어 있던 포그를 만나게 돼요.
영화 같은 첫 장면에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엄마를 잃은 슬픔에 가족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결계를 풀고 튀어나온 괴물 그리블디가 나타나서 사람의 기억을 빨아먹으려고 했어요. 다행히 포그가 그리블디를 지팡이로 후려갈겨서 자루 안에 넣었어요. 그리블디는 꼭 사람같이 생긴 얼굴에 다리가 여덟 개 달린 누런색 괴물로, 키 큰 부족(사람)이 만지는 물건에 깃든 기억을 먹고 살을 찌워요. 놈들은 특히 강력한 기억을 좋아하는데, 고통으로 가득 찬 기억이 그런 편이에요. 그래서 페니의 가족들이 목표물이 된 거예요.
엄마는 페니와 데이비드가 잠들기 전에 침대 곁에서 무섭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엄마는 무엇이든 다리가 많이 달리고 역겹게 생긴 데다가 못된 짓을 하는 걸 그리블디라고 불렀어요. 사악한 의도로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포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엄마가 지어낸 말인 줄 알았어요. 포그 덕분에 엄마와의 추억을 어렵사리 떠올릴 수 있었어요. 포그 역시 페니와 데이비드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이제 포그는 정말 혼자가 아니라 페니 가족과 함께였어요.
결계 너머에서 스멀스멀 괴물들이 나와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앗, 엄마의 유골단지까지 노리는 괴물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두근두근, 끝까지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였어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놀라운 판타지 세계로 그려내고 있어요. 어린이동화로 분류된 것이 실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