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온종일 머리에서 벌레를 털어내려 애쓰는 남자가 있었다.

의사는 머리에 벌레가 없다고 말했다.  (9p)


첫 장면부터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끊임없이 벌레에 물려 괴로워하는 남자의 고통이 환각이든 아니든 너무 강렬해서...

그 남자뿐 아니라 친구도 그 벌레를 발견했고, 두 사람은 함께 빈 마요네즈 통에 벌레를 잡아 넣었어요.

이런, 둘이 봤다고 해서 환각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닌데... 이들은 마약중독자.

이 책에는 온갖 종류의 마약이 등장해요. 

메스(메스암페타민, 필로폰), 메세드린, 크리스털, 크리스털 메스, 스피드, 베니, 바르비투르, 리브리엄, 레드, 애시드(LSD), 마이크로닷, 메스칼린, 조인트, 해시(하시시), 스맥, D물질(느린 죽음, 가상의 약물), 멕스(헤로인과 D물질을 섞은 주사용 약물), 콰크(가상의 약물)...

사실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환각과 혼돈의 대화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주인공 프레드는 잠입 약물 수사관이에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신종 마약 D물질의 공급원을 뒤쫓고 있어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로버트 아크터(밥 아크터)예요. 그의 집에 복잡한 홀로스캐너 장치가 설치되고, 경관들은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감시하고 있어요.

놀랍게도 밥 아크너는 부유한 마약 중개상이자 중독자이며, 동시에 잠입 약물 수사관 프레드였어요.

너무나 철저하게 분리된 두 사람이라서 깜박 속았어요. 이틀에 한 번씩 프레드가 되어 아크터의 거처와 같은 블록에 있는 안전가옥 아파트로 가서 테이프를 재생하며 자신이 한 일을 확인하고 있어요. 홀로스캐너 녹화 기록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편집해야만 해요. 


정보 하나. 잠입 약물 수사관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총알이나 주먹에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다.

대량의 환각 약물을 강제로 맞아서 끝나지 않는 머릿속 공포영화 속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되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에 더해 스트리키닌 같은 독극물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죽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아서,

앞서 말한 두 가지 상황, 즉 평생에 걸친 중독과 공포영화에 동시에 사로잡히게 된다.

흔히 말하는 '숟가락과 바늘', 즉 약에 매달려 사는 삶으로 전락하거나,

정신병원의 벽을 온종일 몸으로 들이받거나, 가장 끔찍한 경우에는 연방 치료소에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낮으로 몸에서 진딧물을 떨어내려 애쓰거나 바닥에 왁스칠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리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의 정체를 알아내 처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개상들은 수사관을 발견하면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들이 팔고 그가 추적하는 바로 그 물건을 이용해서.  (140-141p)


프레드는 처음엔 홀로스캐너를 통해 감시하는 밥 아크너가 자기 자신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점점 모든 게 뒤죽박죽 섞여 버렸어요.

D물질은 중독지수가 매우 높은 마약으로, 뇌에 작용하는 독성 물질이에요. 뇌의 양쪽 반구를 분할시켜 지각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정신병을 유발해요.

지금 프레드는 의료 담당 보안관보에게 검사를 받고 있는데, 만약 인식 장애를 겪는다는 결론이 나면 직무를 중지하고 치료를 받게 될 거예요.

그러나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수수께끼가 남아 있어요.

어떻게 저자는 마약중독자의 머릿속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냈을까요. 

책 맨뒤에 작가 연보가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는 이유가 있었네요.

필립 킨드리드 딕은 1928년 12월 16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자택에서 쌍둥이 누이인 제인 샬럿 딕과 함께 예정일보다 6주 일찍 태어났어요. 그러나 두 달 후 쌍둥이 누이는 세상을 떠났어요.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워싱턴 D.C로 이사했고, 이 시기부터 천식과 심계 항진증을 앓기 시작했어요. 

SF 작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는 광장공포증에 시달렸고, 이혼과 재혼, 불화를 거쳐 자동차 전복 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어요. LSD를 두 번 복용하고 불편한 환영을 경험했어요. 각성제를 비롯한 다량의 약물에 빠져 글을 쓰지 않던 시기가 있었고, 마흔네 살에 자살 시도 후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재활센터에 입원하여 치료받았어요. 파란만장한 그의 삶 자체가 컬트 SF소설 같아요.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스캐너 다클리>가 1977년 출간된 작품이라는 사실이에요.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작품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