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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 히가시노 게이고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사이언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입니다.
바나나우유 속에 바나나 대신 바나나향이 들어있듯이, '과학?'이라는 책은 과학 대신 과학이 스며든 현대인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읽어봤지만 에세이는 처음입니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이아몬드 LOOP》와 《책의 여행자》라는 잡지에 연재한 짧은 에세이를 묶은 것이라 합니다.
원래 과학을 소재로 코너를 기획했던 모양인데, 과학자가 아닌 작가이다보니 과학 이야기는 곧 일상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결과물이며 독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합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과학의 세계, 전문적인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서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지식이나 정보를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기술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탐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은 추리소설을 변화시켰는가" 에서는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추리소설의 트릭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전화나 카메라같이 자잘한 물건만 추리소설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교통기관의 발달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근데 정말로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소설 전개 방식이라고 합니다. 추리소설은 보통 소설과는 달리 치밀한 계산 아래 인물들이 움직이는데,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중요 인물이 아깝게 엇갈리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가 몹시 까다로워졌다는 겁니다. 또한 인터넷 보급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신종범죄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작가가 현실을 앞질러 소설 속에서 새로운 범죄를 예견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그저 뒤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될 거라고 2003년에 말했는데 벌써 2020년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으니... 지금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엇 때문에?"에서는 소설 취재차 메이지대학교 수학과 마스다 교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줍니다. 저자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수학 관련 강의를 들었고, 늘 궁금했다고 합니다. 수학 연구자들은 왜 수학자가 되려고 한 걸까. 마스다 교수님의 답변은, 어릴 적부터 수학을 좋아했다고, 단지 그뿐이랍니다.
이공계 출신인 저자에게 수학은 어디까지나 전기공학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였지, 그 도구를 직접 만들겠다는 발상은 없었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컴퓨터고 휴대전화고 수학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발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수학 강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교수님이 보기에도 최근 학생들의 학력이 현저하게 저하됐다고 하니, 저자는 왜 국가가 이렇게 수학을 경시하는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학에서 멀어지는 원인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을 무엇때문에 공부해야 하는지, 부모나 교사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어떤 인기 연예인은 당당하게 수학은 필요없다고 단언하면서, 더 나아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괴짜라고 놀리고 수학을 싫어하는 자신들이야말로 정상이라고 떠드는 분위기라는 것.
인류가 발전하려면 수학의 진보가 필수적이므로 누군가는 연구해 그 수준을 높여가야 합니다.
저자의 해법은 수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걸러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똑같은 상황이라서 수학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우리도 수포자라는 말은 없애고 수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공계는 장점인가"에서 저자는 이과 출신 작가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질감을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까지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한 모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과학적인 모순이 있는 작품에 대해 지적했는데 뜻밖에도 다른 심사위원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작품에 과학적인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나만큼 연연하지 않는다고 느낀 건 이때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작가의 작품 중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을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각본가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답니다. 작가는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서로 절충안을 찾다가 결국 그 장면을 삭제했답니다. 이때 한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 과학에 무지한 프로듀서와 각본가는 그 무지함 덕분에 멋진 결말을 구상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과 출신 작가라서 과학이란 틀에 너무 얽매였던 게 아닌가라는 자기 반성이었지만,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의 이과적 경험과 지식 그리고 꼼꼼함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 소설이야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겠지만 추리 소설만큼은 과학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공계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 문학의 꽃을 피워내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얻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혈액형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걸 싫어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 안 믿는다는 사람들도 속설에 영향을 받는 걸 보면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혈액형 성격 판단을 믿는 친누나에게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누나는 O형이고 매형은 AB형이잖아. 그럼 아이는 A형 아니면 B형이야.
즉 누나 부부는 부모와 성격이 다른 아이밖에 못 낳는다는 소리인데, 그건 이상하지 않아?"
그러자 누나는 전화 너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구나! 요새 아이들 마음을 통 모르겠어서 고민이었거든.
모르는 게 당연하네."
괜한 소리를 했구나 싶어 후회했다.
《책의 여행자》2005년 5월호 (194-19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