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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평점 :
미국 아이다호 높은 산봉우리 벅스피크가 보이는 그곳에 살고 있어요.
주인공 타라는 일곱 살 무렵에 자신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언덕 기슭에 있는 타라 집, 그 아래 국도를 지나가는 통학버스는 멈추지 않고 쌩 지나가요.
왜냐하면 타라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여겼어요.
비록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산, 계곡, 아이다호가 펼쳐진 농장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곧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어요.
아버지의 맹목적인 신앙.
아버지와 할머니는 날마다 다퉜어요. 아버지가 하루종일 일하는 폐철 처리장이 지저분하다는 문제도 있지만 주로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할머니는 아이들을 야만인처럼 산이나 헤매고 다니게 하지 말고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아버지는 공교육이 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정부의 음모라고 여겼어요.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7남매 중 첫째, 둘째, 셋째 아들, 즉 토니, 숀, 타일러는 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했어요. 토니는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느라 졸업을 못했어요. 셋째 타일러는 학교에 다닌 기억이 거의 없지만 열세 살이 되었을 때 8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일년간 학교를 다니며 대수학을 배웠는데 8월 위버가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어요. 그래도 타일러는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고 대학에 갈 거라고 선언했어요.
막내딸 타라는 오빠 타일러가 집을 떠날 줄 몰랐어요. 오빠 자신도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했지만, 타라는 오빠가 혼자 듣던 음악 때문일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희망의 멜로디, 오빠가 삼각함수 책을 살 때, 그 모든 연필밥을 모을 때 흥얼거렸던 그 비밀의 멜로디.
다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어요.
배움의 발견.
타일러는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키웠던 거예요. 배움을 통해서.
똑똑한 타라는 한 번도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타일러처럼 과감하게 떠나지 못했어요. 타일러의 도움으로 열일곱 살이 된 타라는 ACT(American College Testing. 미국 대학 입학자격 시험 중 하나.) 시험을 통과해 브리검 영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아버지와 숀 오빠 때문에 좌절과 고통의 시기를 겪게 돼요. 아버지가 늘 말했던 '우리'와 '그들' 사이가 이토록 간극이 클 줄은 몰랐어요. 모르몬교, 이 종교에 대해 아는 바도 없지만 더 알고 싶지도 않아요.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타라가 살아온 삶을 통해서 그 심각성을 확인하게 될 거예요. 세상과 단절된 채 맹목적인 신앙으로 산다는 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병원 치료를 거부한 채 후유증을 앓는 모습이나 폐철 처리장에서 위험한 전단기 작업을 어린 자녀들에게 시키는 아버지의 모습은 끔찍한 공포 영화 못지 않았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모든 불행의 원인은 바로...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나마 위로할 수 있는 건 타라는 19년 만에 깨달았다는 거예요. 가족에게 휘둘리고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소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에요. 피할 수 있었던 불행이라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그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뿐.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타라와 그의 가족들처럼.
한 가지 확실한 건 타라가 결국에는 해냈다는 사실이에요. 배움이 가져다 준 놀라운 깨달음.
...어떤 식으로 기억하겠다고 결심했든지 간에
그 사건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때문이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내가 기록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행동이다.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 안에 힘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살겠다는 확신.
그날 밤 내가 쓴 단어들 중 가장 강한 단어는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의혹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라고 쓴 부분 말이다.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길 거부한 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특권이다.
그때까지의 내 삶은 늘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서술되어져 왔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하고, 절대적이었다.
내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만큼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311-312p)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그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타라,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케리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날카로운 눈과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38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