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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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편지를 쓴다.

잠잠히 흐르는 물결 위에.

열다섯 살 먹도록 글자를 배우지 못해 내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물결로 검지를 가져가면 글자가 저절로 써진다.

검지를 너무 깊숙이 담그면 글자가 뭉개지기 때문에

손톱이 살짝 잠길 만큼만 담가야 한다.“ (7-8p)

 

<흐르는 편지>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열다섯 살 소녀 금자가 강물 위에 쓴 편지는 가슴에 고인 눈물입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이 어디로 끌려왔는지도 모른 채 참혹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기를 배었고그 사실을 숨긴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소녀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있지만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밤마다 송장놀이를 하듯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날까요... 그러나 죽을 수도 없고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녀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다흐르는 편지 위에 적고 있습니다.

어머니보고 싶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소녀도 이미 뱃속 아기의 어머니입니다.

끔찍한 전쟁 속에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위안부 소녀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습니다

불행하게 잉태된 아기일지라도 살기를 바라고자신을 짓밟은 군인을 위해서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줍니다

세상은 소녀를 버렸는데소녀는 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낙원위안소에 온 첫날 악순 언니는 내게 물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조선말로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묻고 묻는다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정말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26p)

 

자신이 낳은 아기를 중국 여자에게 준 악순 언니두고 온 딸 생각에 술을 마시는 을숙 언니,

아편 중독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점순 언니땅에 녹슨 못으로 편지를 쓰는 끝순

정신을 놓고 정수리 머리카락을 뽑아대는 요시에앞을 못 보는 금실 언니 곁에 꼭 붙어있는 은실

일본군 애인을 둔 해금맨날 지정보살을 부르는 연순 언니욕쟁이 군자 언니 

그리고 일본여자 이름으로 죽어간 수많은 소녀들당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어떤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을 쓰며 화를 내야 마땅합니다조국은 왜 나를 지켜주지 못했느냐고.

원통한 것은 그때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위안부에 관해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들입니다분명히 그 말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한 과거사에 관한 진심어린 사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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