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파이어
카밀라 샴지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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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나와는 무관한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별탈 없이 살다보니 차별 당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몰랐습니다. 당하는 사람의 심정... 여전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인종차별이야말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악행이라는 것.

재작년인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유독 이 사건을 기억하는 건 피해 중학생이 다문화가정의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지만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가해 학생들이 집단폭행 후 옥상에서 떨어뜨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겨우 열세 살의 아이들이 이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차별과 따돌림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세상에 나와 무관한 사회 문제는 없습니다. 단지 모르거나 외면했던 것일뿐.


<홈 파이어>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 소설가 카밀라 샴지의 소설입니다.

저자는 '홈 파이어'라는 제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Home Fire"는 "keep the home fire burning", 즉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home on fire", 즉 "집이 불에 타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특히 후자의 뜻에서 '집'은 문자 그대로 집일 수도, 가족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354p)

이 소설은 다섯 명의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에이먼이 물었다.

"그 터번 말이에요. 패션용으로 쓴 건가요? 아니면 무슬림이라서?"

"있죠, 매사추세츠에서 제 터번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지금까지 딱 두 명 있었는데요. 

그 사람들은 이게 패션용인지, 아니면 제가 암 투병 중인 건지 궁금해하더군요."

에이먼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암이냐, 이슬람이냐. 둘 중에 뭐가 더 고통스러울까요?"

이런 말에 상대방이 허를 찔린 기분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에이먼은 재빨리 두 손을 모으며 사과했다.

"아, 이런. 미안해요.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네요. 

저는 그냥,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건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어요."

"무슬림으로 살아가지 않는 편이 더 힘들 것 같은데요."  이스마가 말했다.  (37p)


이스마 파샤는 스물여덟의 영국 여성이며, 파키스탄 출신 부모님 덕분에 무슬림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남자 에이먼은 서로 초면이지만 이스마는 그가 누구인지, 아니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 있습니다.

에이먼의 아버지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 내무장관이 된 카라마트 론입니다. 카라마트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여성과 결혼했고, 영국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무슬림의 정체성을 벗어던진 인물입니다. 카라마트는 이슬람 사원의 관습보다 교회의 관습을 치켜세우면서 완벽히 계몽된 자의 태도를 내보였기 때문에 영국 무슬림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반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여전히 그를 가리켜 "무슬림 출신"이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에이먼은 어릴 때 친가를 방문할 때마다 이질감을 느꼈고, 아버지 역시 아들에게 무슬림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이먼의 정체성은 영국인이지, 파키스탄인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카페에서 처음 본 이스마에게 끌린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호기심? 묘한 친밀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란, 늘 우연을 가장해 찾아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마의 아버지 아딜 파샤는 처음부터 가족에게는 부재한 존재였습니다. 이스마가 기억하는 건 여덟 살 무렵,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였는데 그때 쌍둥이 남매 아니카와 파베이즈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MI5 와 특별국 요원들이 찾아와서 아버지에 대해 물었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고, 들리는 소문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아버지가 지하디스트, 즉 이슬람 테러리스트였고 바그람에 수감되었다는 얘길 들었으나 공식적인 사망 소식을 전해듣지는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괴로운 상황에 처할까봐 가슴 졸이며 살다가 돌아가셨고, 뒤이어 엄마까지 돌아가시면서 이스마와 두 동생들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MI5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 : 1909년에 조직된 영국의 국내정보 담당 보안부로 1931년에 보안부(SS , Security Service)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받았음. 영국의 핵심 국가보안기관 중 하나임.

이스마는 쌍둥이 동생 아니카와 파베이즈가 열두 살 때부터 엄마 노릇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열아홉 살이 된 아니카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 파베이즈는 청과물 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파베이즈는 실종 상태입니다.

곧 밝혀질 진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세상은 더 이상 진실을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홈 파이어>는 감춰진 진실에 대해 이스마, 에이먼, 파베이즈, 아니카, 카라마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폭력을 가하는 이들이 존중하는 유일한 대상은 더 극심한 폭력일 뿐이란다."  (225p)

세상에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비폭력을 외치는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자꾸만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구원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아름답고도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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