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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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 문을 연 식당에는 중년의 부부가 직접 우동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야식이 먹고 싶어서 함께 온 가족도 있고, 밤늦게 일을 끝내고 허기를 채우려고 혼자 온 사람도 있습니다.

맛있게 우동을 다 먹은 사람이 문을 나서기 전, 부부를 향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가 나가자마자 부인이 남편에게 투덜대며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 설거지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복은 무슨 복이야."

식당에는 아직 우동을 먹고 있는 사람들,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너 평의 작은 식당이라서 그 부인의 말을 들은 건 남편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축복의 말조차 함부로 걷어차버리는 경솔함... 만약 내가 신이라면 그 부인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축복을 거둬갔을 거라고.

실은 제가 그 식당에 남아 있던 손님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문자나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서로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진심을 담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말뿐이라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축복의 말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축복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만.

반대로 욕설이나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나를 향해 던져도 내가 도로 던지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가장 안타깝고 불행한 건 상대가 던진 저주를 진짜라고 여겨서 큰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상처가 깊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새해에는 축복의 말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주의 말은 시원하게 걷어차버릴 겁니다.

늘 말의 힘을 기억하며, 한 마디의 말이라도 신중하게, 진심으로...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류시화 님의 '인도 우화집'입니다.

류시화 님은 이 책의 저자로 되어 있지만, 자신은 이 우화와 이야기들의 저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과 종이에 기록된 인도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 썼으니, 자신은 한 사람의 엮은이, 혹은 이야기 수집가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는 작가이고 싶었다." (13p)

인도 우화는 머나먼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어리석음과 지혜가  단박에 구분이 되는데, 왜 삶에서는 그 구분이 어려운 걸까요. 너무 가까우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듯이, 자신의 삶은 잘 안 보여도 타인의 삶은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화는 수많은 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저 역시 일상을 관찰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나 봅니다.

그 식당 부인의 경솔한 말 한 마디는 타인의 치부가 아니라 제 내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저도 모르는 어떤 순간에, 복을 걷어찼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원래 남의 허물은 태산 같고 자기 허물은 티끌 같아 보이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지라...

지혜의 산을 오르려면 겸손의 입구부터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 문제를 발견하는 문제

인생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생로병사는 말할 것도 없고 불만족, 분노, 온갖 장애물 등 많은 것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매사에 우울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스승이 하루는 그를 불러 물 한 잔을 가져오게 하고는,

소금 한 줌을 타서 마식 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물맛이 어떤가?"

제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무 짜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그를 근처 맑은 호숫가로 데리고 가서

호수에 똑같은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했다.

그러고는 물맛이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제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원합니다."

스승은 제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차이를 이해하겠느냐?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라."

소금의 양은 같지만,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짠맛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14-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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