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일어서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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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

한 작품으로 각인된 이름입니다.

<바닥에서 일어서서>는 1980년, 사라마구가 58살 때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게는 이 소설이 거대한 서사시처럼 느껴졌습니다.

포루투갈의 현대사는 모르지만 세대를 걸쳐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독재자, 재벌, 군경찰...노동자.

이 추운 겨울,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힘있는 정치인은 보란 듯이 텐트를 치고 단식을 합니다. 겨우 몇 끼니 굶으면 그만인 다이어트 단식.

진짜 생계가 어려워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노동자들은 비참하기만 합니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알아채지 못한다,

관련된 사람들이 아내와 아들처럼 가까운 사이일 때도."  (19p)


대농장 라티푼디움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존재합니다.

라티푼디움의 소유주들, 노르베르투, 알베르투, 다고베르투.

농장에서 푼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 그들은 굶주린 개의 무리.

십장, 노동자들 중 한 명이지만 소유주들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하면서 배를 불리는, 선택된 개.

거대한 서사시의 첫 줄에 등장할 사람은 도밍구스 마우템푸이며 아내는 사라 다 콘세이상입니다.

사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밍구스를 선택했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새로운 정착지가 바로 대농장 라티푼디움인데, 어이없게도 도밍구스 마우템푸는 가족을 내팽개치고 방랑을 떠났습니다.

사라의 아들 주앙 마우템푸는 겨우 열 살 나이에 가장 노릇을 했습니다. 가엾은 엄마와 남동생 안셀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청년이 된 주앙은 파우스티나를 만나 자식이 셋입니다. 맏이는 아들이고 나머지 둘은 딸. 맏아들 안토니우 마우템푸는 힘든 일을 할 만큼 나이들지 않았지만 돼지 치는 일을 했습니다. 매일 일하지만 끼니는 초라하고 늘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소년들 중 마누엘 이스파다와 친구들이 감독에게 자신들이 일한 날들에 해당하는 돈을 달라면서, 이제 더 견디지 못해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감독은 너희들을 파업꾼을 몰아버릴 테니 조심하라고 협박합니다. 너무 어리고 순진한 소년들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합니다. 네 명의 소년은 파업을 선포한 폭도가 되어 군경찰에 신고되면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사실 살라자르의 목숨을 노린 폭파 사건이 이틀 전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풀려날 수 없었을 겁니다. 대농장에 돌아온 아이들은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마누엘 이스파다는 돼지를 치러 갔다가 안토니우 마우템푸를 만나게 됩니다. 

농부들은 하루 일당으로 삼십삼 이스쿠두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지금 받는 돈으로는 가족 모두가 쫄쫄 굶는 지경이니. 그들이 감독에게 묻습니다. 그래, 농장주는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감독이 대답합니다, 한 푼도 더 못 준다고. 이때 주앙 마우템푸가 입을 엽니다, 그럼 밀은 추수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그보다 적게 받고는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감독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 뒤, 주앙 마우템푸, 쿠스토디우 칼상, 시지즈문두 카나스트루, 마누엘 이스파다, 다미앙 카넬라스는 지역 폭도라는 죄명으로 군경찰대원에게 끌려갑니다. 파업을 주도했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심문 당하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들이 달을 따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일당을 아주 조금 올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사실 그 액수는 농장주에게는 전혀 손해가 되지 않는 푼돈입니다.

자, 여기 농장 소유주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알베르투가 말한다, 발이 끼는 것보다는 구두를 자르는 게 나아, 일 년 추수를 안 하고 놔둔다고 망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자 감독이 말한다, 그들은 돈을 더 원합니다. 양식 가격이 계속 올라 굶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시지즈베르투가 말한다,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어, 우리는 우리가 주고 싶은 돈을 줄 뿐이야, 먹을 것은 우리한테도 비싸.

그러자 감독이 말한다, 그자들 말을 들어보니, 농장주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모이겠다는데요.

그러자 노르베르투가 말한다, 나는 개가 내 뒤를 따라오며 짖는 걸 원치 않아."  (460p)


가진 자들에게 못 가진들은 그저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였습니다. 

주앙 마우템푸는 감옥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끝까지 거짓 자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려고 일을 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인 일도 한 적이 없다고, 더 황당한 건 글을 모르는 주앙에게 직접 진술을 적으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글을 알았다면 농부가 아닌 군경찰이 되었을 겁니다.

여섯 달이 지나고, 주앙은 풀렸났고 같은 시기에 체포된 시지즈문두 카나스트루도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심장으로 포옹하며 말합니다,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도 하지 않았어.

한낱 개와 개미에 불과한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함께 짖고 꽉 물어야 할 때라고 외칩니다. 끝나지 않은 투쟁.


"어떤 목소리들은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선다, 

지난 두 해 동안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그걸 말해봐, 내 자식 둘이 굶어 죽었어, 

나에게 남은 자식 하나는 커서 짐을 지는 짐승이 될 거야, 

나는 지금 짐을 지는 짐승이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507p)


"...문제는 여덟 시간이나 사십 이스쿠두가 아니야, 우리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이제 뭔가 해야 돼,

그런 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 그들에게는 무기가 있고 우리는 없다는 핑계로는 충분치 않아, 

지금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야, 이런 말을 하는 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야, 아버지는 다른 인생은 살려고 하지 않았지, 가엾은 분,

내가 당신을 때리고 군경찰이 술에 취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기억뿐이었어, 

만일 신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때 개입했을 거야."   (5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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