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국선변호사의 회고록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도입된 것이 2004년의 일이라는 것.

저자는 2014년,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었고, 성범죄 및 마약범죄 전담 재판부에 배정되어 일해 왔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변론한 사건을 기초로 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법과 사람 사이, 범죄 안팎의 풍경들.

일반적인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와는 달리 국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는 좀 독특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라 법원에서 정해준 국선변호인이라는 점 때문일 겁니다. 국선변호인은 최대한 유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조언하는 건데도, 피고인 입장에서는 변호사 비용을 내지 않으니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성의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 나쁜 국선이 되고 맙니다.

핵심은 '소통'이라고 합니다. '좋은 국선'이냐, 아니면 '나쁜 국선'이냐는 피고인과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되는냐에 달린 문제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어느 청각장애인의 변호를 맡았던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그 남자는 수화를 배운 적이 없는 청각장애인이라서 경찰이 필담으로 피의자신문을 진행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고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구현돼야 하는 중요한 이념 중 하나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입니다.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일을 다루는 민사 재판과 달리 형사 재판은 국가(검사) 대 개인(피고인)이므로 피고인이 변명할 수 있는 권리가 충분히 보장돼야 합니다. 따라서 청각장애인(법에는 '농아자'로 표현돼 있다)은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하는 사건으로 규정하여 방어권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사건에서 방어권 제도로써 제대로 보장되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말문이 막힐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니 피고인을 제대로 변호하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렇듯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가 공정하게 운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생각합니다.

형사 재판에서 국선변호를 받는다고 하면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재산이나 소득이 상당한데 국선변호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폼 나는 차를 몰고 다니면서 남의 돈 고작 몇 천만 원을 갚지 않으려고 시간 끌기용으로 국선변호사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본전(원래 받은 약식 명령의 벌금)이 100만 원인데 변호인을 선임하려면 최소 그 몇 배를 줘야 하니까 그 돈이 아까운 경우, 자기가 유죄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돈 들여 변호인을 선임할 필요가 없는 경우, 수행비서까지 거느린 건물주 아저씨가 어차피 쓸 변호사 수임료를 국선변호를 선택하여 밥이나 봉투를 건네며 생색내려는 경우 등등. 제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진짜 국선변호가 절실한 이들의 기회를 뺏는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실제로 먹고살기 위해 억울함을 밝히는 걸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법이란, 법적인 권리란 그저 그림의 떡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국선변호인이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 책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사소하고 조각난 이야기들이 앞으로 국선변호제도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든, 혹은 제안이든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법은 법정에 선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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