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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정위.이나래 지음 / 브.레드(b.read) / 2019년 11월
평점 :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지 알 수 없지만, 한 번 이어진 좋은 인연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나와 너,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줄이 연결되어 서로 쓰러지지 않게 꼭 붙들어주는 것 마냥.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이라는 제목만 보고, 스님에게 사찰 음식을 배우는 책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맞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사람입니다. 정위 스님과 나래 기자님.
우연히 취재원의 소개로 길상사 정위 스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직접 찾아뵙고 취대를 요청했으나 극구 사양하여 돌아왔다고 합니다.
며칠 후 지원군을 대동하고 뵈러 갔더니, 이번에도 스님은 "우리가 늘 해 먹는 게 무슨 기삿거리가 된다고... 아서요, 내세울 것이 아니에요" 하셨답니다.
그런데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스님에게 반했답니다. 그건 스님에게서 느껴지는 품격이랄까, 품격이 있는 사람이 주는 감동이랄까.
스님의 살림은 꾸밈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아끼고 배려하며 생활에 충실한 가운데 스며든 멋이 있습니다. 취재 요청을 하던 기자는 어느새 그저 스님 하시는 그대로 옆에서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답니다. 그리하여 천주교 신자인 기자는 스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장독 뚜껑에 매화꽃 뿌려 비벼 먹는 비빔밥을 맛본 후로 스님의 살림법을 배우게 되었답니다. 매화꽃비빔밥을 맛본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기자는 정위 스님 덕분에 살림의 감칠맛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 책은 종교를 떠나서 일상의 품격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삶의 방식, 즉 살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레시피나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정위 스님은 무엇이든, 어떤 하찮은 것도 늘 아까워하고 가여워하신다.
동네 골목길을 가다 우수수 떨어진 열매 알갱이나 꽃 시장에서 발에 차이는 부러진 꽃가지도 주워 오신다.
무엇에 쓰이나 싶은 마른 열매는 찻잔 받침이나 창턱에 다정하게 놓고,
주워 온 꽃가지도 빈병이나 컵 등 마땅한 짝을 화병 삼아 근사하게 자리를 잡아준다.
... 낡고 오래된 천들은 스님이 삶고 매만지며 간수해서 무척 깔끔하다.
... 장 깊숙이 있던 천 조각들은 저마다 쓸모 있는 생활용품으로 바뀌었다." (189p)
요즘은 일회용품이 넘쳐나기 때문에 웬만한 물건들은 새로운 것을 사는 동시에 버려집니다. 쉽게 쓰고 버리는 습관이 물건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너도나도 빠르게, 새롭게... 그러다가 덜컥 마음에 병이 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쓸모 없다고 느낄 때...
정위 스님처럼 세상에 무엇이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래 기자님과 정위 스님이 나누는 대화도 좋고,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요리법도 나와 있어서 좋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이 책은 요리책이 될 수도 있고, 인생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위 스님이 활짝 웃는 모습이나 텃밭을 가꾸는 손길, 조물조물 요리하는 과정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집니다. 어쩐지 향긋한 모과차 같다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