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문 정도는 열 수 있어
유키나리 카오루 지음, 주원일 옮김 / 제우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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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문 정도는 열 수 있어."

소설의 제목치곤 너무 맥 빠지는 얘기네, 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잠궈둔 문이 아니라면 누구나 열 수 있는 게 문이니까.

그러나 364페이지를 읽는 순간,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어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의 기분이랄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초능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①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염동력(텔레키네시스)

② 상대의 신체 일부를 마비시켜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위 누르기(패럴라이즈)

③ 라이터나 성냥 등의 도구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불을 생성하는 발화능력(파이로키네시스)

④ 손으로 직접 물질에 접촉하여 물질에 남아있는 소유자의 사념을 읽어내는 정신측정능력(사이코메트리)

⑤ 상대의 눈을 통해 마음을 읽는 독심술(마인드 리딩)

⑥ 멀리 떨어진 인간에게 사고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정신감응(텔레파시)

     - 전 일본 사이킥 연구소 간행 『~당신에게도 있는 힘 - 초능력 입문』에서 발췌

설명된 내용만 보면 놀라운 초능력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뭔가 엉성하고, 많이 부족해요. 이를테면 염동력도 자동차 한 대쯤은 움직일 줄 알아야 쓸모가 있을텐데 손으로 들어도 될 양념통을 살짝 10cm정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나마 염동력을 한 번 사용하면 진이 빠져서 하루 내내 능력을 더 쓸 수 없어요. 상대를 제압하는 가위 누르기의 단점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쭉쭉 빠진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패럴라이즈 초능력자는 젊은 대머리 남자가 되었어요. 불을 생성하는 발화능력도 스트레스가 극심한 경우 갑자기 나타나서 본인을 더 당황하게 만들어요.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발화능력이라 화재 사고를 걱정하게 되네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소녀는 결벽증이 심해서 남의 물건을 만지는 것 자체가 공포라니 능력을 쓸 일이 거의 없어요. 독심술을 가진 남자는 소심하고 여린 성격 탓에 타인의 마음을 읽고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래서 아예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에휴,,, 이거야 원, 차라리 초능력이 없는 게 더 편할 듯 싶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364페이지를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어요. 

바로 이거였어.


"엄마한테는 말이야, 자식이 세상의 전부야. 세상을 구한 거나 다름이 없지."  (398p)


시시한 초능력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쓸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시시하지 않아요.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건 그 초능력 자체가 아니었어요. 

어쩌면 당신에게도 있는 힘, 어떻게 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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