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원을 말해줘>는 이경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자 한국 SF 장르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려 7년 만에 탈고한 장편소설.

시간의 양이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놀랍네요.

'소원'이라는 단어 속에 인간의 욕망과 공포 그리고 생존본능을 담아냈어요.

무엇보다도 현실의 비단뱀과 가상의 동물 '롱롱'을 통해 세상의 '허물'을 드러내고 있어요.

원래 제목은 '롱롱'이었다는데, '소원을 말해줘'로 바꾼 건 신의 한수였네요.

뱀, 롱롱, 인간 ... 허물을 벗겠다는 욕망 그리고 소원.


끔찍한 재난에 휩싸인 D구역.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피부병이 이 도시의 풍토병이 되었어요.

전문가들은 각질세포 형성에 관여하는 구조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유독 티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증세가 심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D구역 사람들은 피부가 깨끗해도, 다른 구역 사람들에겐 기피 대상이에요. 그러다보니 D구역은 다른 구역과 자연히 격리되었어요. 아직 치료제는 없고, 'T-프로틴'이 피부 각화증을 완화시키는 신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하루 두 번 복용해야 돼요.

'그녀'는 B구역 사설동물원에서 일하던 파충류 사육사예요. 석 달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산사태가 동물원을 덮쳤고 모든 것이 무너졌어요. 파충류관도 무너져 다른 뱀들과 함께 비단뱀도 사라졌어요. 파충류관에서 가장 큰 동물, 30미터에 달하는 비단뱀은 동물원에서 인기 동물이었어요. 방역대가 동원돼 사라진 동물들을 쫓았고 발견 즉시 사살했어요. 

동물원은 폐쇄되고 그녀는 직장을 잃었어요. 통조림공장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지만 사육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이라서 하루 두 번 먹던 프로틴을 한 번으로 줄였어요.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먹을 때도 있었어요. 퇴근 후에는 비단뱀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는 사이 허물이 자라기 시작했고, 허물이 드러나자 통조림공장에서 해고됐어요.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녀는 공원에서 먹고 자며 뱀을 찾아다녔어요. 그녀가 비단뱀을 그토록 찾는 이유는 사육사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뱀을 좋아하고, 뱀에게는 사육사가 필요하니까.


"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벗겨진다고 했거든."  (61p)

"D구역에 가면 뱀을 모시는 무당들 천지야. 세상의 허물을 벗기려고 언젠가는 뱀 신이 나올 거라 믿는 거지.

하지만 아직까지 롱롱을 봤다거나 굴에서 꺼냈다는 작자는 없어. 롱롱의 전설을 믿는 것과,

롱롱을 내 손으로 꺼내는 것은 숫제 다른 말인 거다, 이 말씀이야. 내 말 알아들어?"  (66p)

"시민들이 롱롱의 전설만큼 믿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프로틴이죠.

프로틴이 허물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롱롱과 프로틴, 이 둘을 결합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156p)

 

'소원'이라고 하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떠올라요. 눈깜짝할 사이에 화려한 궁전을 세우거나 옮기는 것과 같은 마법들.

스스로 이뤄낼 수 없는 욕망들은 자꾸만 커져가죠. 지니보다 더 막강한 힘을 원했던 자파는 결국 램프 속에 영원히 갇혀버렸죠.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이뤄내야 해요. '그녀'는 간절히 믿었고 행동했어요. 익명의 '그녀'는 진정한 '소원'을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세상의 허물은 반드시 벗겨져야 해요. 자연의 순리대로. 그래야 우리도 허물을 벗을 수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