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미술 산책 - 그 그림을 따라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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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라고 하면 알퐁소 도테의 <별>이 생각나요.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아름다운 풍경들.

가본 적은 없어요. 실제 어디쯤인지도 몰랐어요.

<프로방스 미술 산책>이라는 책이 끌렸던 것도 '프로방스' 때문이었어요.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이라서.

저자 스스로는 뻔한 미술 기행이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미술을 주제로 한 멋진 감성 여행이었어요.

남들이 정해놓은 여행 코스가 아니라 나만의 감성 코스라서 더 특별했던 것 같아요.

유명한 미술관들은 살짝 미뤄두고, 아담한 동네 미술관 투어를 선택했어요. 관광객 입장이 아닌 현지인 감성으로 그 지역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여행이죠.

흔히 '남프랑스'와 '프로방스'를 동의어로 사용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고 해요.

프로방스는 로마 시절 이후부터 사용됐던 옛 지명으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otte d'Azur, 줄여서 PACA)'가 지금의 지명이래요.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쪽에서도 특히 동부 지역만을 포함한 지역이래요.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여정을 보니, 저자의 말마따나 프로방스 여행이라고 해도 프로방스 안에서 어떤 곳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책 속 사진을 보고 있으면 모든 장소들이 다 예술이라서, 물론 멋진 곳만 찍었겠지만, 예술적 감성이 저절로 솟아나는 풍경들이에요.

1884년 모네가 화폭에 담은 모나코 해안 절벽 길의 모습은 현재 매끈한 해안 도로가 깔려 있지만 과거 화가 모네의 심정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자동차로 이동 중에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이 작동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고 해요. 겨우 표지판을 보면서 일방통행 길과 좁은 골목, 언덕을 지나 산자락에 다다른 곳은 카뉴쉬르메르의 오트 드 카뉴(Haut de Cagnes)였대요. 관광 안내소에서 마을 지도를 받고 나서야 지도 어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작고 낯선 동네를 걸어봤다고 해요. 마을 곳곳에 화가들이 마을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세련된 도시와는 달리 소담스럽고 정갈한 동네라고.

유독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많아서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데, 동네 사람들도 낯선 이들에게 따뜻했다고 해요. 외지 사람이 차를 세우면 벌금을 물게 되니 자기 차를 빼주겠다며 친절을 베푼 곳도,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눈치보지 않고 오래도록 멍 때릴 수 있었던 곳도,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준 곳도 모든 여정을 통틀어 카뉴쉬르메르의 오트 드 카뉴가 유일했다고 해요. 또한 이곳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말년에 약 12년 동안 거주했던 집이 있어요. 이 집에서 8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르누아르 미술관이 된 그 집에는 가족 사진과 손때 묻은 이젤, 물감 묻은 파레트, 그의 휠체어 등이 보관되어 있어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따뜻함 때문이에요. 생전 르누아르는 "세상은 이미 불쾌한 것들로 넘쳐나지 않는가. 예술까지 일부러 불쾌한 것들을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83p)라고 말했다는데, 역시나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행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왜 저자가 작은 마을의 미술관 여행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도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들은 옛 정취가 남아 있어요. 덕분에 카뉴쉬르메르에서는 르누아르를 만날 수 있고, 엑상 프로방스에서는 세잔을 만날 수 있어요. 한 명의 예술가가 어떻게 작품을 완성해냈는지 그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어요.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은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예술가의 삶과 작품의 탄생 과정은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에서 느낄 수 있어요. 이러한 지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서 렌트카는 필수라고 하네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워서 직접 운전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요.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프로방스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네요. 제 마음 속에도 '프로방스'가 들어왔네요. 느긋하게 그 마을을 거닐고 싶어요.


"누구나 삶에서 한 번은 내 삶을 뒤흔들 만한 대단한 인연을 만난다고 하는데

흘려 보낼 인연인지 붙들어야 할 인연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238p)


"마티스를 좋아하고 르누아르를 소중히 여기며 샤갈을 아끼는 이, 

세잔을 존경하고 고흐를 안쓰럽게 여기며

수잔과 로트렉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에게

프랑스는

무궁무진한 보물들을 한껏 품고 있는 보물섬이나 다름없다."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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