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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평점 :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한국인의 90% 이상이 정답을 맞칠 수 없는 이야기.
부자지간인 두 남자가 차을 타고 가다가 마주오는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어요.
운전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고 아들은 큰 부상을 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 왔어요.
이때 응급실 의사가 아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이 사람은 내 아들이니 반드시 살리겠다."
그러면 이 의사와 아들은 무슨 관계일까요?
편견과 고정관념은 고질병 같아요. 쉽게 고쳐지질 않아요.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라는 책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어요.
원제는 "Doing Harm"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사결정 절제 명제인 "Do no harm(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요.
마땅히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가 도리어 환자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라서 더 충격적이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의료체계가 나를 얼마나 잘 돌볼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저자 역시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비교적 빨리 진단받은 것이 행운이란 걸 몰랐다고 해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현실인 거죠.
미국자가면역질환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질병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4년 동안 네 명의 의사를 거친다고 해요. 환자의 절반 정도는 병을 진단받기 전까지 건강염려증이 심각한 만성 불평꾼으로 무시되었다고 하네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이 책은 남성 의사가 지배해온 의학체계에서 여성 환자가 받는 의료에 젠더 편향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심장질환을 진단할 때 나타나는 젠더 편견을 보고한 수많은 논문 중 하나는 2008년에 128명의 미국, 독일, 영국의 일차진료 의사에게 배우가 심장질환 환자를 연기한 영상을 보여줬는데, 의사들이 여성 환자에게는 남성 환자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요. 환자들이 동일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세 국가의 일차진료 의사들은 환자의 성별에 따라 달라졌어요. 실제로 51세 여성은 심장마비를 겪는 동안에도 의사에게 절대 심장마비에 걸렸을 리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해요. 의사는 "이 여자는 너무 젊고 게다가 여성이잖아요"라고 말했대요. 심장질환은 남성의 질환이라는 신화가 여전히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지식이 만든 편견은 남녀 모든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남성은 여성에게 더 흔한 질병인 우울증, 편두통, 섬유근육통, 유방암을 진단받기 어렵다고 여러 논문은 주장해요. 그러나 이런 편견은 여전히 여성인 경우에 더 심각해요. 의사는 여성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다소 예상 밖이라도 환자의 보고가 신뢰할 만하다고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아요. 의사는 심장마비 증상을 보이는 남성 환자는 심장마비로 진단하면서, 여성 환자는 스트레스라며 병의 원인을 심리적 요인으로 돌리고 있어요.
더욱 심각한 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의 경우는 심인성 증상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젠더에 따른 편견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없어요. 26세의 여성 로런은 끔찍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갔으나 의사가 제대로 통증 감지를 하지 않아서 복막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았어요. 로런은 자신이 울지 않아서 의사가 아프다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여성이라서 그 의사는 내가 통증을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통증 강도를 실제보다 과정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순간 나는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에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정확하게 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환자의 말을 그냥 듣지 않는 것은 상당히 절망스러운 일이에요." (145p)
사실 의료계가 여성 환자의 증상을 믿지 않아서 생긴 지식의 손실은 생각만 해도 충격적이에요.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거론되는 19세기 의사 윌리엄 오슬리 경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여라. 환자가 진단명을 말해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해요.
결국 의사들의 성 편견과 무지가 의학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제는 의학계와 연구 공동체는 의학의 젠더 편견을 바로잡아야 해요. 또한 여성들은 환자로서 의료계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이 겪었던 의사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 해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예요. "여성의 말을 들어라. 여성이 아프다고 말할 때, 여성을 믿어라." (44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