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詩作 -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지음, 김승일 옮김 / 비아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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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인의 작법, 즉 글쓰기 방식에 대한 책이에요.

우선, 책 띠지에 인물 사진이 인상적이에요.

이 남자는 누구인가?

깊은 눈매, 우뚝 선 콧날, 고집스레 다문 입술... 표정이 심상치 않아요.

아마도 자신을 찍고 있는 줄 몰랐던 것 같기도 해요. 저 눈빛은 몇 초간 응시해야 나올 수 있어요.

그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주제가 정해질 것이고,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표현 방식이 될 거예요.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글쓰기" 라는 작가의 말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기본은 마음에서 시작되니까요.

글쓰기에 거짓이 섞이면 결과적으로 작품 구조의 생명력을 갉아먹게 된다고.

그래서 저자는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정말로 뜻하는 바를 어떻게 말로 전달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누구나 잠재된 자기표현 능력이 있으나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어쩌면 상상력을 끄집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거나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은 '상상'보다는 '사실'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이미 만들어진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식으로...

나만의 상상을 자유롭게 마음껏 누리는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오늘부터, 시작>은 누구나 자신에게 상상의 자유를 허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시작 詩作 을 시작 始作 하기!

저자는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귀 기울여 진짜 내 생각을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 글쓰기 방식을 계속 공개하는 것이 독자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신중하게 일반적인 방법들을 소개했노라고 말했어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모범적인 사례를 통해 배우는 거예요.

바로 품격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죠.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은 그들이 과거의 어느 시접에서 겪었던, 혹은 그들 고유의 성격 때문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인상적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경험이 더 넓을수록,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에서 나온 것일수록 시인은 실로 위대해집니다. "   (54p)


책의 구성은 첫째 날부터 시작해서 아홉째 날로 끝나요.

글쓰기 수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뭔가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동물 사로잡기, 바람과 날씨, 사람들에 관해 쓰기, 생각하는 법 배우기, 풍경에 대한 글쓰기, 소설 쓰기의 시작과 계속하기, 가족 만나기, 달에 사는 생물.

중간에 <시인의 노트>는 글쓰기의 구체적 방법이 나와 있어요.


"글쓰기 수업이 체욱 수업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아이디어를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작고 단순한 대상에 집중하는 연습은 가장 주요한 정신 운동이다.

어떤 물체라도 괜찮다. 1회 5분이면 충분하고, 첫 연습은 1분으로 한다.

연습을 반복하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  (121p)

-  넷째 날, 생각하는 법 배우기 <시인의 노트>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어요.

얼마나 나의 감각들이 무뎌졌는지, 아는 것과 의식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시를 쓸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감각이 차단되었던 거라고.

이제 좀더 예민하게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탐구해봐야겠어요.


"... 강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순간순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들리지 않는 음악,

강물에 떨어지는 눈송이의 영혼, 이중성과 상대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덧없음,

절대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완전히 무의미한 것... 언어가 이런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잡아낼 때, 원자나 기하학 도형이나 렌즈가 아니라

인간의 호흡과 체온과 심장 박동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을,

우리는 시 詩 라고 부릅니다. "    (251p)


테드 휴즈는 영국의 계관시인이에요.

2008년 <더 타임스 The Times>는 테드 휴즈를 '1945년 이래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고 해요.

이 책은 시인이 우리에게 전하는 작은 상자예요. 열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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