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너무나 실감나는 소설을 읽다보면, '혹시 실화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으로 넘어 갑니다.

이 책의 주인공 그리어 카데츠키는 대학 신입생입니다. 그녀는 학구열 넘치는 학생이자 독서광이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는 미숙합니다. 수줍음 많고 조용한 성격의 그리어가 페이스 프랭크의 강연을 듣고나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왠지 어린 소녀가 당당한 여성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일 가능성을 염두에 뒀는데,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통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어 카데츠키는 내가 아니고, 나와 비슷하지도 않은 데다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시절에 대학에 다녔다.

하지만 그리어는 내가 그 시대에 그랬듯이 젊다. 사실 나도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직 젊었다. (대학생이었다.)

...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세대 간 이야기이다.

연장자인 페이스 프랭크는 그리어 카데츠키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이다.

그녀는 유명한 페미니스트이고, 자신만만하고, 이미 엄청난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그리어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를 자기 밑에서 일하라고 부른다.

그리어는 페이스가 낯선 사람에서 자신의 멘토가 되고, 자신은 페이스의 (대단히 기꺼운) 제자가 되었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 이 두 여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해 쓰면서 나는 변화하는 사람과 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을 깨달았다."  (590-591p)


<여성의 설득>을 읽으면서 뻔하지 않은 전개에 놀랐고, 현실적인 인간 관계의 갈등과 심리를 보면서 공감했습니다.

단순히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말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열여덟 살의 그리어가 예순세 살의 페이스의 첫만남은 굉장히 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원래 그리어는 페이스 프랭크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파티에 갔다가 대런 틴즐러라는 극혐의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학교에 알렸지만 징계위원회는 허울뿐인 처벌로 끝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절친인 지 아이젠스타트와 함께 성추행 남학생을 규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강연을 함께 보러가자고 그리어에게 권했고, 그것이 바로 페이스 프랭크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리어는 강연 전날 밤에 구글을 통해서, 1970년대 초에 페이스 프랭크가 여성을 위한 최초의 신문을 발간한 페미니스트이자 사회개혁가인 아멜리아 블루머의 이름을 딴 잡지 블루머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1984년 여성의 설득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페이스의 목소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 그리어는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그녀에게 완전하게 설득되었고, 사로잡혔으며 더 많이 가까워지길 열망했습니다.

놀라운 건 강연 후 질문 시간에 그토록 수줍음 많은 그리어가 팔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페이스는 똑바로 그리어를 쳐다보면서 특별한 기회를 줬습니다. 그리어는 작은 양의 울음소리처럼 겨우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51p)


이 책은 그리어뿐 아니라 남자친구 코리와 그의 부모님, 절친 지와 그의 부모님, 페이스 프랭크와 그녀의 첫사랑 에밋 슈레이더의 삶까지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춰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동떨어진 듯이 개개인의 가족사와 함께 현재의 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지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 흐름이 특정 인물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기치 않은 비극으로 어떻게 삶이 흔들리는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지...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단한 인물조차도 결함이 있고, 실수하는 모습이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완벽한 건 없다고, 그저 완벽하려고 애쓸 뿐.

각자의 삶이 보여준 교훈은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여성의 설득>을 통해 설득되었다면, 이제는 계속,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눈을 깜박이고, 앞다리 하나를 움직이고, 고개를 앞으로 길게 빼는 느림보.

힘은 결국 사라진다고 그리어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힘 있게 한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까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에는 거북이가 그들 모두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5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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