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
J. A. 화이트 지음, 도현승 옮김 / 위니더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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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본 적이 있어요.

우리 마음 속에는 기억을 담아두는 병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마치 와인창고처럼.

어떤 병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들반들 투명 유리 너머로 내용물이 보여요.

하지만 아주 오래된 병들은 먼지가 잔뜩 끼여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질 않아요.

<나이트북>을 읽으면서 떠올랐어요.

그 오래된 기억의 병들, 거의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이트북>의 주인공 알렉스는 무시무시한 공포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에요.

알렉스가 네 살 때, 자다가 깨어 거실에 갔더니 부모님이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보고 계셨어요. 자신도 모르게 몰래 숨어서 그 영화를 처음 본 거예요.

살면서 그토록 무섭고 짜릿한 느낌은 처음이었고, 알렉스는 오싹한 세계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때부터 귀여운 토마스 장난감 기차들을 버리고 괴물 인형이나 플라스틱 송곳니, 할로윈 소품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느날,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간에 알렉스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어요. 가방 속에 든 나이트북을 태워버리려고 몰래 나온 거예요.

나이트북은 알렉스가 이야기를 쓰는 노트인데, 자신이 꾼 악몽이나 무서운 이야기들이에요. 근데 자신이 쓴 이야기가 무서워서 태워버릴 계획이었어요.

알렉스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열린 곳은 4층이었어요. 지하 버튼을 눌러도 꼼짝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내려갔어요.

그때 아파트 복도 끝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고, 곧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주인공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뭔가에 홀린 듯 낯선 집 문을 두드렸고, 20대 후반의 여자가 나왔어요. 그 집 안으로 들어선 알렉스는 자신이 강력한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여자는 바로 마녀 나타샤였어요.

마녀의 덫에 걸린 알렉스, 어쩌면 좋죠?

어디선가 "마녀는 이야기를 좋아해."라는 소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어요. 그래서 알렉스는 마녀 나타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나타샤는 매우 마음에 들어 했어요. 이럴 수가, 마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매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신세가 된 거예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셰헤라자드처럼.

다만 마녀의 집에 갇힌 건 알렉스만이 아니었어요. 야스민이라는 소녀가 옷장 속에 숨어 있었어요. 마녀의 고양이 레노어는 두 아이를 감시하고 있었어요. 투명으로 변해서.

과연 알렉스와 야스민은 마녀의 집에서 어떻게 탈출할까요.


이 소설 속에서 알렉스가 <환상특급>이라는 옛날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해요.

알렉스에게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있다면, 저한테는 <환상특급>이 있어요. 너무나 충격적이고 색다른 이야기라서 단숨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환상 속에서만 벌어질 것 같은 무섭고도 기이한 일들이라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그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것 같아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제 머릿속에서 펼쳐졌던 기억이 나요.

<나이트북>은 알렉스라는 밤의 이야기꾼을 통해서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을 되살려준 것 같아요. 흥미진진했어요. 마녀에게 들려주는 알렉스의 이야기와 마녀의 집에 갇힌 알렉스 자신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알렉스가 없애려고 했던 나이트북과 숨겨진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까요. 진짜로 알렉스가 무서웠던 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가요, 나이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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