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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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은 메가톤급 작품이었어요.

기존의 스릴러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줬어요. 무엇보다 영화로 제작되어서 머릿속에 각인된 느낌이에요.

바로 그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 《카리 모라》가 나왔어요.

우와, 두근두근 떨리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어요.

이번에는 어떤 악마가 등장할까라는...

그런데 반전은 악마와 맞설 주인공이었어요. 그 주인공의 이름은 카리 모라예요.

카리 모라는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스물다섯 살 여성이에요. 미국에서 TPS(임시보호상태)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9년째 살고 있어요.

이민국에서 엄격하게 단속하기 몇 년 전에 고졸 검정고시 자격증을 따냈고, 가정 간병인 자격증도 땄어요. 하지만 그 이상의 교육을 받으려면 더 확실한 신분증이 있어야 해요.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에요. 낮에는 펠리컨 하버 시버드 스테이션에서 수의사들과 다른 봉사자들과 같이 새와 작은 동물들을 재활 치료하는 일을 하고, 틈틈이 비어있는 저택의 관리인 노릇을 하고 있어요. 하필이면 그 저택에 사이코패스 한스 피터 슈나이더와 그 일당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돼요.

마이애미 해변 북쪽 비스케인 만에 위치한 그 저택은 원래 파블로 에스코바르(콜롬비아 마약왕)가 주인이었지만 여기서 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에스코바르가 죽은 후 이 집은 여러 번 법적인 문제에 휘말렸다가 무모한 투기꾼들을 비롯한 여러 주인을 거쳐서 지금은 영화 세트장으로 임대하는 장소가 되었어요. 카리 모라가 관리하기 전까지 가정부가 넷이나 바뀌었는데, 하나같이 그 집이 무서워서 도망간 거예요.

놀랍게도 카리 모라는 그 저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정성껏 관리하는 능력자였어요. 정원을 가꾸고, 동물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저택이 품고 있는 음침함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거죠. 진짜 문제는 사람인 것 같아요. 스멀스멀 시커먼 아우라를 가진 한스 일당이 그 저택에 들어오면서 카리 모라 역시 위험을 직감했어요. 한스 피터도 카리 모라를 처음 본 순간 알아차렸어요. 괴물들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됐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것, 이것이 가장 소름돋고 무서운 점인 것 같아요.

《양들의 침묵》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괴물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어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는 자각이 공포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공포물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리는 것 같아요. 특히 《카리 모라》에서는 유난히 끔찍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힘들었어요. 한스 피터 슈나이더, 괴물은 하나가 아니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카리 모라의 과거 속에 남아있는 괴물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살고 있었어요. 정말 다행스러운 건 카리 모라가 괴물에게 먹힐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거예요. 진작에 알았다면 그토록 조마조마하지 않았을 텐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드 카리다드 델 코브레... 카리 모라의 수호 성인은 성 베드로였어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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