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갓 - 그 의사는 왜 병원에서 몸을 던졌을까?
사무엘 셈 지음, 정회성 옮김, 남궁인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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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하우스 오브 갓>은 충격 그 자체.

낭만적인 메디컬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빨리 접으시길.

현실의 의료계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끔찍한 공포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다소 원색적인 장면들이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좀비 영화 못지 않은 자극적인 요소들 때문에 이 책이 페이퍼백으로만 2백만 부가 팔린 건 줄 알았어요. 그러나 끝까지 읽고나서야 깨달았어요. 공포와 에로가 뒤섞인 휴먼다큐라는 걸.

이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들썩이던 1973년 무렵이에요.

저자는 하버드 의과 대학교의 교수로 30년간 재직했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생생한 의료현장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반인들은 모르는 지옥 같은 세계.


"인턴 과정은 로스쿨과 다릅니다. 로스쿨에서는 오른쪽 왼쪽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인턴십은......, 여러분 중 한 명은 올해 말쯤 이곳에 있지 않을 겁니다.

과로 탓이지요. 여러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방심하게 되면......, 매년 적어도 의대 한 곳, 어쩌면 두세 곳의 졸업반 학생들은

여러분의 동료가 자살한 탓에 생긴 공백을 메우게 될 겁니다."  (38-39p)


하우스 오브 갓 House of God 은  BMS (Best Medical School)와 제휴한 병원이에요.

재미 이스라엘인협회에서 의사 자격을 갖춘 젊은 이스라엘인들이 차별 때문에 질 좋은 인턴 과정을 밟을 수 없자 1913년에 설립했어요.

병원은 내부적으로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의료진 구성은 피라미드식이에요. 밑바닥 계층으로 하우스 오브 갓의 레지던트와 인턴으로 구성된 '하우스 스태프'가 있어요. 인턴들은 의사와 환자는 물론 병원 직원들에게도 언제든 혹사당할 처지에 놓여 있어요.

주인공 로이 G. 바슈가 바로 그 밑바닥 계층인 인턴이에요.

서른 살의 젊은이, 로이가 겪게 되는 하우스 오브 갓의 인턴 생활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에요.

인턴들을 지도하는 레지던트 팻맨은 자신만의 법칙을 알려주는데, 몇 가지 의료 용어(그들만의 속어)로 설명할 수 있어요.


◆ 고머 : 크게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을 수시로 찾는 달갑지 않은 환자

◆ NAD LOL  :  No Apparent Distress 외견적 증상이 없는 / Little Old Lady 연약한 노부인

◆ 터프 : 환자를 다른 과나 병원 외부로 떠넘기는 것

◆ 버프 " 자동차에 광을 내듯 차트를 잘 꾸미는 것

◆ 월 : 환자를 하우스 오브 갓에 입원하지 못하게 하는 응급실 인턴

◆ 시브 : 너무 많은 환자를 입원시키는 응급실 인턴

◆ 슬리퍼 : 의료 계층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윗사람의 엉덩이를 충실하게 핥으며 애쓰는 하우스 의사들을 일컫는 용어

◆ 프리뭄 논 노체르 primum non nocere : '무엇보다 해 되는 일을 하지 마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격언.


원래 인턴을 지도해야 할 레지던트 조는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원칙주의자인 데다가 일중독자예요. 어떤 환자든 가능한 한 모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갔다가 나중에 인턴들을 맡게 돼요. 그 전에 팻맨의 가르침에 적응이 됐던 인턴들은 몰래 조를 속이고 고머들에겐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아요. 그냥 버프만 했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우수 인턴이 돼요. 

레지던트 팻맨과 조, 둘 중에 누가 더 유능한 의사일까요.

아마도 누구의 입장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로이는 팻맨에게 한 표를 던져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의료행위라는 걸 증명해냈으니까, 무엇보다도 환자들이 좋아하는 인간미와 실력을 갖춘 의사니까.

가장 인상 깊은 의사는 샌더스 박사예요. 로이가 맡게 된 말기 암 환자인데 그는 로이와 의학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돼요.

로이가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자 이렇게 말해줘요.

"이해해. 죽어가는 사람의 의사가 된다는 게 우리의 가장 힘든 일이지."

"그러면 어떻게 치료하나요?"

"아니야. 우린 치료하지 못해. 난 한 번도 치료를 하지 않았어.

나도 인턴 과정을 밟는 동안 자네처럼 냉소주의와 무기력에 빠졌지.

그럼에도, 우리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

치료는 아니야. 그건 아니지.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은 정을 베풀고 사랑하는 길을 찾아내는 데서 나와.

우리가 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일은 환자와 함께 있는 거야.

당연히 자네가 나와 함께 있는 것도 그렇지."  (264-265p)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턴은 왜 병원 8층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을까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유가, 이 책 속에 적혀 있어요.

로이를 향해 여자 친구 베리는 '기계'라고 말했어요. 당신은 얼간이가 아니라 기계라고.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살아남거나... 이건 하우스 오브 갓 인턴들만의 악몽이 아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올해 2월,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서른세 살의 소아과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어요.

그는 사망 직전 일주일 동안 115시간을 일했다고 해요. 거의 2~3일을 한숨도 못 잔 상태로 환자를 치료하느라 과로했던 거죠. 의사가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이 없어서, 홀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은 거예요.

지난해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죽음으로 내몰렸어요. 간호사 조직의 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계의 열악한 구조가 만들어낸 비극이에요.

진짜 충격적인 반전은 <하우스 오브 갓>이 1978년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이에요.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의료계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어요. 이 책이 현실을 바꿀 정도의 힘은 없다 해도, 적어도 그들의 세계를 스스로 이해하는 거울은 되었으면... 어쩌면 저자는 그때부터 이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의료계에서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고, 의료계에서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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