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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게르트루드는 테우가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9p)
<퍼펙트 데이즈>의 첫 문장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 테우가 게르트루드를 좋아한다는 고백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일단 테우라는 이름이 한국식으로 '태우'라는 발음과 같아서 그런지 친근하게 느꼈어요.
그런데 이럴 수가, 테우는 평범한 의대생이 아니었어요.
혹시 네크로필리아?
너무 섬뜩했어요. 테우가 좋아하는 게르트루드는 해부 실습실에 누워 있는 시체였거든요.
사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테우라는 인간이 시체를 좋아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이제까지 살아 있는 인간을 좋아해본 적 없는 테오가 우연히 파티에 갔다가 클라리시를 만나면서 첫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정확히 표현하면 정상적인 인간이 느끼는 '반했다'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 클라리시는 술에 살짝 취한 상태였고, 워낙 거침없이 털털한 성격이라서 테우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던 건 뿐이에요.
그래서 그녀의 손이 살짝 테우의 어깨에 닿았고, 헤어질 때는 테우의 경직된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하며 작별 인사를 했던 거예요.
주목할 건 그녀의 행동이 아니라 그녀에게 반한 테오예요.
클라리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그날 이후로 테오는 클라리스를 미행하면서 스토커 짓을 했어요.
똑똑한 그녀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테오는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하죠. 그녀에게 들킨 김에 사랑을 고백하지만 단칼에 거절을 당하고, 홧김에 그녀를 기절시켜서 커다란 트렁크에 넣었어요. 마침 클라리스는 작업 중이던 시나리오 <퍼펙트 데이즈>를 마무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는 찰나였어요. 완벽하게 그녀를 납치한 테오는 그녀와의 '퍼펙트 데이즈'를 꿈꾸며 범죄의 길로 들어섰어요.
테오가 네크로필리아인지, 사이코패스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순간 그는 괴물인 거예요.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
클라리스는 키가 145센티미터쯤 되는 작고 마른 체격의 스물네 살 대학생이에요.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건 시나리오 작가예요. 현재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이 소설 속에는 그 시나리오 개요 부분이 수록되어 있어요.
퍼펙트 데이즈 - 각본 : 클라리스 마냐이스
영화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둥그스름한 보닛과 트렁크가 있는 고급 구형 차) 안에서 시작된다.
시간은 밤. 안에서 무언가를 피우고 있는 듯한 열린 차창으로 자욱한 연기가 새어 나온다.
곧이어 세 친구가 등장한다. 모두 기분 좋게 취한 상태다.
...
컷. 한 여자가 시트 밑에 누워 잠들어 있다.
카메라가 서서히 그녀의 얼굴로 접근하면서 관객들은 그녀가 카로우라는 걸 알게 된다.
카로우는 알람시계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다. 방금 전까지 꿈속을 허우적거렸던 모양이다.
그녀 옆에는 미리 꾸려놓은 여행가방이 놓여 있다.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이번 여행에서 완벽한 나날을 만끽하게 될 것인가?" (85-86p)
절묘하게 시나리오처럼 클라리스는 테우와 함께 고급 구형 차를 타고 떠나게 돼요.
목적지는 원래 클라리스가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위해 예약해뒀던 테레조폴리스.
그러나 동행하는 테우는 친구가 아니라 납치범.
과연 이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누가봐도 클라리스에게는 퍼펙트 데이즈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문득 퍼펙트, '완벽'이라는 말이 소름돋는 공포로 다가왔어요. 우리의 삶에서 '완벽'이란 결코 평범하지 않음, 정상에서 벗어남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어쩌면 완벽한 사이코패스 테우의 관점에서는 퍼펙트 데이즈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테우의 관점...
"아주 예쁜 이름이 떠올랐어. 게르트루드. 어때, 자기야?" (342p)
